하시모토 류타로(교본룡태랑) 일본총리의 제2기 2차내각이 11일 하오 출범했다. 2차내각은 간사장 등 당3역 유임에 따른 당내 파벌 안배에 치중한 측면이 강하다.당내외의 많은 비난과 우려에도 불구, 우선 록히드사건으로 구속돼 실형을 선고받은 사토 고코(좌등효행) 현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을 총무청장관으로 기용한 것은 보·보 연합파에 대한 무마책으로 보인다. 가토 고이치(가등굉일) 간사장 등 당3역 유임은 「자민·사민·사키가케연합」 유지파들에 총리가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보수파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당내 보수연합파의 대표격인 가지야먀 세이로쿠(미산정륙) 관방장관을 교체하면 당과 내각에서 보수연합파의 목소리가 사라진다는 보수파들의 지적을 총리가 수용한 것이다.
또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를 외무장관으로 기용하는 등 당내 파벌의 세력분포에 비례해 파벌의 지분을 할애한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미쓰즈카 히로시(삼총박) 대장성장관을 유임시킨 것은 행정개혁에 대한 하시모토 총리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며 규마 후미오(구간장생) 방위청장관의 유임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을 마무리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번 2차내각의 진용은 한마디로 자민당 패배이후 수면아래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자민당 구파벌의 부활을 선언했다는 성격이 짙다. 하시모토 2차내각의 출범은 과거 자민당의 발목을 잡았던 파벌정치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따라 하시모토 2차내각의 앞날은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파벌정치 부활에 대한 당내외의 비난과 관료들의 행정개혁에 대한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사토의 기용은 하시모토 총리의 개혁이미지를 퇴색시킬 가능성이 높고 사민·사키가케와의 협력관계에 새로운 불씨로 등장할 전망이다.<도쿄=김철훈 특파원>도쿄=김철훈>
◎가토 간사장/자민당내 2인자 ‘차기 총리감’
가토 고이치(가등굉일·58) 자민당 간사장은 자민당내 2인자로 95년 9월 이후 자민당의 선거·자금·인사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간사장 자리를 지켜왔다. 간사장으로는 이번이 세번째. 차기 총리감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토 간사장은 자민당과 사민당간의 관계를 능란하게 조정, 3당 연립체제를 무리없이 이끌어왔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올 도쿄(동경)도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압승을 이끌어냈으며 제1야당인 신진당의 탈당자 영입으로 총재선거 직전에 의석수를 251석으로 늘려 과반수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파인 그는 야마사키 다쿠(산기척), 고이즈미 준이치로(소천순일랑)와 트리오를 이루며 중견·소장의원들을 중심으로 「그룹 신세대」를 구성, 세대교체를 표방하고 있다.<윤태형 기자>윤태형>
◎무라오카 관방/최장수 당 국회대책위장 역임
무라오카 가네조(촌강겸조·66) 신임 관방장관은 건설업 가문출신으로 최장수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원내총무)을 지낸 인물이다.
무라오카 장관은 90년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간과 95년 10월부터 현재까지 국대위원장을 두차례 역임하면서 가네마루 신(김환신)의 최장수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사민, 사키가케와의 3당 연립체제 아래서 국회를 원만하게 운영했으며 유엔평화유지(PKO)법안의 폐기후 자민·공명·민사당의 3당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부치 게이조(소연혜삼)파인 그는 평소 과묵하고 온화한 성격이지만 90년 12월 하라(원) 중의원 의장의 퇴진을 설득할 때 하라 의장이 사임을 거부하자 면전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갈 정도로 맺고 끊는 면도 있다.<권대익 기자>권대익>
◎호리우치 통산성/정치가문 출신… 야당서도 신망
호리우치 미쓰오(굴내광웅·67) 신임 통산성 장관은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파에서는 보기드문 당료출신으로 자민당내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도 신망이 두터워 정적이 거의 없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도 의원직을 지낸 정치인 가문 출신인 그는 76년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했다.
그는 89년 우노 소스케(우야종우) 내각 시절 노동성 장관으로 첫 입각했으나 2개월뒤에 내각이 총사퇴하는 바람에 단명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총무청이 발족되면서 초대 행정관리 정무차관으로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당시 총무청 장관을 보좌하면서 행정개혁을 추진했다.<권대익 기자>권대익>
◎사토 총무청/록히드사건때 실형선고 받아
사토 고코(좌등효행·69) 신임 총무청장관은 홋카이도(북해도)출신으로 고학으로 메이지(명치)대 정경학부를 졸업한 뒤 중의원에 두번 도전한 끝에 63년 당선, 정계에 입문했다. 지금까지 중의원에 11회나 당선된 자민당내의 원로정치인이다.
록히드 사건으로 체포돼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79년 다시 오뚝이처럼 정계에 돌아와 간사장대리를 거쳐 91년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내각에서는 염원이던 당3역중 하나인 총무회장을 맡았다.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 총리의 최측근이며 당내 실력파로 통하나 록히드 사건으로 발목이 잡혀 한번도 입각하지 못했다.<도쿄=김철훈 특파원>도쿄=김철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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