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매일이 추석이다. 굳이 송편이 먹고 싶다면 떡집에 가면 살 수 있고 새 양말과 새 내복은 늘 설합장에서 입기만을 기대하고 있다.내가 유년시절에 보냈던 추석은 공해에 물들지 않았던 시절이라 밤마다 실오라기 같은 달을 보며 추석을 기다렸다. 달이 반달로 채워 갈수록 동네의 분위기는 술렁였고 엄마가 짜내려가던 가을 스웨터도 마무리를 짓게 된다.
초저녁부터 낮게 뜨는 달은 거의 쟁반처럼- 그 당시 쟁반은 거의 둥근 달 모양이었다― 부풀어지고 어른들은 쌀을 함지박에 씻어 물에 불린다. 불려놓은 쌀을 추석 전 날 새벽부터 떡방앗간 앞에 줄을 서고 차례를 기다렸다가 쌀가루로 빻는다.
쌀가루를 머리에 조심스럽게 정성드려 이고 와서 뜨거운 물에 반죽을 해놓으면 이 반죽으로 온갖 모양의 송편을 빚어냈다. 식구들은 저마다 요술을 빚으며 이야기로 웃음바다를 펼쳤다. 집안의 어른들은 어찌된 일인지 송편을 조막조막 잘도 빚었다. 나는 내 것이라 정해놓고 소발자국만하게 빚어놓고 송편이 쪄지는 시간만 기다렸다. 뜨거운 송편을 참기름에 소금을 발라 뜨거운 채로 호호 불며 먹으면 추석 전날 오후는 배부터 불러 기분이 좋았다.
그쯤에 어머니로부터 양말과 새 내복을 선물로 받았다. 추석 다음날 오랜만에 기운 양말을 벗어던지고 뽀송한 새 양말을 신고 학교에 가면 새양말이 닳을까봐 살살 걷던 생각이 지금도 새롭다.
배가 차면 동생을 데리고 아이들이 모이는 동네 골목으로 향한다. 골목 어귀에선 『뻥이요』하며 쌀강냉이가 터져나오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놀다가도 그때가 되면 귀를 서둘러 막곤 했다. 아이들이 하는 놀이라야 땅따먹기. 아무데서나 줏은 사금파리로 땅바닥에 금을 그어가며 했다. 새 옷이 땅에 닿을까, 새양말에 흙이 묻을까 노심초사하다보면 아예 3살짜리 여동생을 대신 세워놓고 집에 와서 입던 옷으로 갈아입고 나갔다.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기를 쓰고 땅을 따먹던 친구들은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남자아이들은 자치기를 했다. 은근히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남자애는 꼭 자치기 말을 내 앞으로 던져놓곤 나한테 주워달라고 말을 걸었다. 나도 그 아이가 싫지 않아서 늘 놀면서 그 아이에게 곁눈질을 보내곤 했다. 땅따먹기가 끝나면 깨어진 기왓장으로 오랫말도 했다.
지금 어린이들은 오락이나 게임에 빠지면 친구도 필요없이 혼자만의 세계로 고립되지만 우리가 어렸을때는 친구가 있어야 놀았다. 늘상 흙을 만지고 땅과 함께 살았다. 흙에 어찌나 많이 넘어졌는지 요드팅크 자국이 마를새가 없었고 무릎의 상처딱지가 아물날이 없었다.
지금은 공해때문인지 달도 별도 보기 힘든 추석을 우리 아이들은 맞고 있다. 이들은 무슨 추억을 유년의 기억으로 영원히 기억하려는지.<조양희 소설가>조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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