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이 스산하기만 하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겨레의 가장 큰 명절인데도 예년 같지 않을 조짐들이 일찍부터 감지되어 왔다.먼저 중부지방의 경우 흐린 날씨로 보름달마저 볼 수 없다는 예보이니 허전하기 이를데 없다. 때마침 개기월식마저 겹쳤지만 지구 그림자에 달이 차츰 가려졌다 드러나는 장관 역시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하필이면 1년에 한번뿐인 중추절의 만월 완상을 지구가 가려버리고 구름이 덮어버린다는 게 어쩌면 상서롭지 못한 징조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아도 도산기업이 줄잇고 금융위기론도 팽배하면서 경기가 썰렁해져 노동부 조사로는 100인 이상 기업의 23%가 추석상여금을 못주고, 나머지 기업의 지급률도 크게 낮아졌다지 않는가. 이처럼 달도 못보고 호주머니조차 헐거운 한가위인데 스산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그리고 연인원 2,800만명의 대이동으로 말미암아 자칫 연휴의 반을 길바닥에서 보낼 수 밖에 없는 운명이야 예년처럼 피할 도리가 없다 치자. 하지만 그런 귀성전쟁조차 이제는 한계를 넘어 『길이 막히니 차라리 우리가 그리로 가마』하며 고향의 늙은 부모가 서울의 아들·손자를 찾는 역귀성의 불효사태 앞에서 중추절의 정취도 차츰 퇴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부터 추석연휴 초기 수도권 고속도로 하행차량이 전년보다 16% 증가한데 비해 상행차량은 37%나 급증했다. 반대로 연휴 끝날 때의 차량은 상·하행간에 극심한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추석때조차 타향살이를 면할 수 없게 되어 가는 「드라이」한 세월을 우리는 지금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석을 더욱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또 하나 꼽으라면 그건 정치다. 출발은 불꽃처럼 화려했으나 지금은 식어버린 잿덩이만 흩날리는 것 같은 정권말의 박탈감부터가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닌가.
클린턴의 선거참모였던 딕 모리스가 회고록 「백악관 집무실 뒤편」에서 대통령의 등급에 관해 대통령과 대화한 내용을 소개한 것이 생각난다. 『내 위치가 어디쯤이지?』라는 클린턴의 전화 물음에 모리스가 『3류에 들기에도 아슬아슬한 실정』이라고 대답하자 대통령도 『나도 그렇게 보네』라고 마지 못해 동의했다는, 우리에게 퍽 시사적인 내용이었다.
그런 정권말의 땅에 떨어진 국가 기운과 국민 사기를 마땅히 다시 높여 줄 책무를 지닌 대선후보나 예비후보들이 오히려 국민들을 절망시키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정치 횡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그들이 하나같이 내세우고 있는 것은 「추석 민심을 잡겠다」는 일념 뿐이다. 한해의 풍성한 수확에 감사하고 따뜻한 마음을 열고 나누는 추석상에 나라를 이꼴로 만들고도 모자라 잘못된 정치의 흙탕물까지 튀기며 한가위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진정 민심을 잡으려면 오늘의 난국을 벗어날 혜안과 도덕성이 뒷받침된 정책대결과 페어 플레이 정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추석민심 잡기에 나선 그 사람들에게선 그런 자세보다는 「이기고 보자」는 책략이 앞서고 기회주의와 저질의 흑색선전만이 판을 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아들의 병역 파동을 추석민심 잡기로 벗어나 보려는 여권후보. 경선때의 승복 약속에도 불구하고 역시 추석민심 잡기로 독자출마의 명분을 찾으려는 자중지란의 도전자. 야권단일 후보는 이미 물건너 갔는데도 다자후보의 난립속에 현철씨 사면약속을 흘려서라도 기어코 대권을 잡아보려는 야권후보 등이 펼쳐 보이는 오늘의 칙칙한 정치기상도 앞에서 추석달인들 차마 고개를 내밀기가 싫을 것이다.
달이 뜨건 가려지건 한가위는 변함없는 겨레의 큰 명절이요, 따뜻한 마음과 결실의 상징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스산함 속에서일망정 모두가 추석상앞에서 따뜻한 인정만은 나누고 보자. 또한 진지한 대화로 「3류」 정치판도에 명확한 확정판결을 내려줄 마음의 준비도 가다듬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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