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리리릭 “90년대를 호출한다”/90년대 남과 여의 소통되지 않는 욕망/운동권과 에로티시즘 나르시시즘에 빠진 문화와 그 문화의 죽음 절묘하게 배합그는 90년대를 「호출」한다. 젊은 소설가 김영하(29)씨. 뭇 시인과 소설가들이 「감각의 성감대를 찌르고 핥고 부드럽게 매만지는/ 매혹적인 영화 볼 시간에 창 없는 시를 누가 읽나」(신현림, 「중경삼림을 보고 돌아온 밤」중)라거나, 「소설은…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작가들은… 새로운 생존전략을 수립하지 않으면 안된다」(하재봉, 장편 「컬트시대」를 시작하며 중)라며 문학에 회의적 몸짓을 보일 때 김씨는 그런 자괴감을 「삐리리릭」 하는 호출기의 신호음처럼 경쾌하게 날려버리고 첨단의 문학적 감수성을 생산해 낸다. 95년 등단 이후 그가 발표한 단편 11편을 모은 작품집 「호출」(문학동네 발행)은 세기말 한국문학의 확실한 수확이다.
가끔 잡지에 잡문이나 써서 살아가는 스물여덟 살의 나. 미국유학 가버린 애인에 실연당한 나는 어느날 지하철 역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순간의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서 있어야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지 명확히 아는 사람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정사장면 전문 대역배우이다)에게 호출기를 건네주며 말한다 『진동으로 맞추어져 있습니다. 반드시 몸에 지녀주십시오』. 표제작 「호출」은 허무에 빠진 남자와 나르시시즘에 중독된 여자가 서로 호출하기와 호출받기를 갈망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작가는 독자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다. 호출은 없다. 모든 것은 「나」의 환상이었다. 『삐삐를 통해 호출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결국 나 자신일 뿐이다』. 「호출」에서 김승옥이 저 「서울의 달빛 0장」을 통해 드러냈던 불모의 에로티시즘의 90년대판을 보는듯하다면 지나친 감일까.
「호출」에 실린 김씨의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적 요소들이 있다. 영화 「전태일」과 「쇼걸」이 나란히 상영되는 90년대의 시대상, 거기서 결코 소통되지 않는 욕망에 빠진 채 살아가는 남과 여. 운동권과 에로티시즘, 병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문화와 그 문화의 죽음이 절묘하게 배합돼 있다.
그는 사실 어떤 문학적 수업도 받지 않았다. 연세대 경영학과(86학번)와 대학원 출신. 지금은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로 있다. (몇몇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운동권 이야기는 그가 고 이한열군과 동기생이라는 점으로만 미루어 짐작해 두자). 자살안내원이라는 이상한 직업의 주인공을 등장시킨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96년)」가 화려한 등단작이지만 이에 앞서 92년 학생운동을 무협소설풍으로 그려내 화제가 됐던 「무협학생운동」의 작가가 바로 그이다.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독자의 의견을 듣고 작품을 수정하는 PC통신 1세대 작가. 일년에 한번 이상 한 달여는 『오히려 생활비가 싼』 외국에서 생활하고, 가끔 「귀찌」를 착용하는 신세대. 김씨는 『4·19세대가 역할을 다한 시점이 80년대 말』이라며 『90년대와 너무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20년대 지식인의 모습을 장편으로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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