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부도·금융부실 신용공황 단계/재경원 지나친 방임 ‘시장의 실패’ 불러/위기타개 위해 적절개입 불가피불황의 지속으로 기업부도가 급증하고 부실채권 증가로 금융기관 부실문제까지 대두되었다. 무디스사 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국내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대기업 연쇄부도로 종금사의 부실여신은 8조5,000억원에 달하여 전체 자기자본 3조9,000억원을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외신용도 하락으로 국내 은행의 단기 해외차입금에 대한 가산금리는 1월 연 0.18%에서 4월 0.35%, 8월 0.64%로 상승했다.
외환시장도 혼란상태이다. 핫머니의 공격으로 홍콩과 싱가포르의 역외선물환시장에서는 1달러당 원화의 1년물 선물환시세가 1,000원을 넘어서는 등 원화 폭락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환율상승을 방어하는데 필요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는 8월말 현재 311억달러로 적정선인 350억달러를 밑돈다. 요컨대 현재 경제불황은 신용공황으로까지 진전되고 있는 것이다. 와튼경제연구소가 발표한 경제안정도는 95년 10월의 73점보다 크게 내려간 53점으로 주요 아시아 국가 등 17개국 가운데 최하위로 떨어졌다.
이렇게 경제가 크게 악화한 것은 근본적으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 때문이지만 시장경제론자인 강경식 부총리가 지휘하는 재정경제원의 비현실적인 정책대응도 작용했다. 채권단이 기아 부도유예사태에 대해서 김선홍 회장의 무조건 사퇴와 노조의 무조건 감원동의서를 강요한 배경에는 재정경제원의 방침이 있었고, 제일은행과 종금사에 대한 한은 특융을 지연시킨 것도 재경원이다.
시장경제는 강자에게 유리한 경제질서이고 기본적으로 불안정하다. 유조선에 칸막이가 쳐진 여러개의 저장탱크가 있는 것은 좌초하더라도 전체 기름이 새어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큰 건물에 방화벽이 있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세계경제도 마찬가지로 자본운동이 자유로워지면 그만큼 불안정이 심해지고 그 피해는 결국 취약한 경제구조를 가진 후진국들이 당하게 된다.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을 철폐하는 빅뱅도 수익성이 높은 부분으로 금융자본을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조치로서 강자에게만 유리한 조치이다.
기업도산과 금융기관 부실화의 근원에는 과다한 차입으로 문어발식 방만 경영을 해온 재벌체제가 있다. 금융기관의 대출금은 7,984억달러에 달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164.7%로 아시아에서 최고수준이다. 탕감해야 할 부채규모는 1,000억달러로 GDP 대비 20%에 달하여 정부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경제위기는 재벌이 주도하는 시장경제의 산물인 것이다.
강부총리의 시장경제 제일주의는 이제 비현실적임이 드러났다. 시장경제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어떻게 시장경제를 강화해서 해결할 수 있는가. 시장경제하에서는 불황, 실업, 소득분배 불평등 등 시장실패 현상을 피할 수가 없고, 국가는 경제에 개입해서 이를 최소화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강부총리는 케인즈 이전시대에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한국과 상황이 전혀 다른 선진국에서 살고 있는가. 정부는 현실에 맞지 않는 시장경제 강화 실험을 당장 그만두고 적절한 경제개입을 강화해야 한다. 기아자동차 생산 중단시에는 14조원의 부가가치 손실(GDP의 3.5%)이 예상되므로 경영진과 노조 목죄기를 그만두고 부도유예협약기간 만료때까지 자구노력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시장경제 강화론은 재벌들이 끈질기게 주장해온 것이다. 재벌의 주장은 기업경영이라는 미시적 시각에 입각한 것이다. 정부는 재벌들의 주장에 휩쓸려서는 안되고 국민경제의 거시적 운영이라는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과거에 용자유토라는 말로 농지소유와 이용규제를 철폐하자는 놀라운 주장을 했고,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에도 앞장선 강부총리가 이러한 정부역할 수행에 요구되는 인식을 결여하고 있다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옳지 않을까.<경제학과>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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