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의 스포츠’ 무색한 내기경기·캐디 희롱 등/0점짜리 에티켓에 해외서도 ‘더티 플레이’ 악명「골프는 좋은데 골퍼가 나쁘다」. 우리 사회에서 골프의 부정적인 면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되는 표현이다. 특히 골프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 골프 열기가 갑자기 불면서 우리만의 이상한 골프 관습이나 어글리 골퍼들이 많이 목격되고 있다.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게 에티켓.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게 가장 기본적인 골프의 룰이지만 골프장에 늦게 나와 경기를 지연시켜도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지나친 내기와 공찾기로 원만한 경기 흐름을 방해하는 사람들, 심한 음담패설로 캐디들을 당혹하게 하거나 휴대폰을 들고 나와 소리를 높여 통화하는 사람들도 많다. 신사운동이라면서도 남이 안본다고 아무데서나 소변을 보는 사람도 에티켓 「0」점짜리다.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캐디만 나무라거나 폭행을 가해 영원히 그 골프장에서 추방된 사람도 있다.
이런 나쁜 버릇은 외국에서도 계속돼 동남아 몇몇 골프장에서는 한국사람이라면 넌더리를 내기도 하고 미국에서도 한국골퍼들이 들어오면 경기진행요원(마샬)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기도 한다.
골프장 밖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른바 「골프중독증」환자들. 대기업에 근무하는 박모(34) 과장은 골프를 치기 위해 평일에 휴가를 내곤 한다. 『부킹이 어려운 주말을 피해 평일에 월차휴가를 내 골프를 치는 경우가 많아요. 때로는 급하게 정해진 골프약속 때문에 반나절 휴가를 낼 때도 있죠
L그룹 이모(48)이사는 골프에 빠지면서 업무를 거의 내팽개치게 된 케이스. 1년전 골프에 입문한 이씨는 뒤늦게 골프의 묘미에 빠져 틈만 나면 골프장을 찾게 되었다. 골프에 거의 미치다시피 한 이씨는 업무시간에도 출장계획을 내 골프를 쳤고 웬만한 업무는 골프장에서 처리했다.
주부골퍼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가정갈등도 생겨나고 있다. 2년전 골프를 시작한 주부 정모(39)씨는 1주일에 한번씩 새벽골프를 치면서 남편과 아이들의 원성이 높다. 골프 약속이 있는 날이면 아이들 도시락과 아침밥만 챙겨 놓고 나왔고 약속이 없는 날에도 골프연습장에서 3∼4시간씩 보냈다.
좋은 골프채가 새로 수입됐다 하면 무조건 바꿔야 성이 풀리는 사람들, 골프치는 것을 무슨 큰 위세로 알고 남의 눈은 아랑곳 없이 직장이나 목욕탕에서 골프채 휘두르는 연습을 하는 사람들, 골프를 매개로 바람을 피는 남녀들, 모두 꼴불견 골퍼들이다.<배성규 기자>배성규>
◎골퍼들 대접 못받는다?/골프장 부대시설 치중/빡빡한 라운딩에 정장 요구·비싼음식 등 이상한 ‘골프문화’
한국 골퍼들은 대접을 못받는다?
수년간 미국 근무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J씨(42). 그는 대다수 주재원들이 그렇듯 미국에서 골프를 배웠다. 그는 지난 주말 처음으로 한국 골프장을 찾았다가 희한한 인상을 받았다.
15만원이라는 큰 돈을 쓰고 골프를 쳤지만 제대로 대접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캐디들이 무조건 빨리 움직일 것을 요구, 골퍼들의 플레이를 돕기보다 몰고 다닌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진행」을 빨리 해야한다는 캐디들의 재촉 때문에 처음 몇 홀은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농담조차 주고 받을 새도 없이 정신없이 뛰어 다녀야 했다.
함께 라운딩한 동반자들이 플레이를 마치는 것을 지켜본 후에 다음 홀로 이동하는 것이 골프 에티켓이라고 배웠는데 시간에 쫓겨 제일 먼저 플레이를 마친 사람이 혼자서만 이동하는 것도 거슬렸다. 뒷팀은 쫓아오고 앞팀은 빨리 따라 잡아야 하고. 그러다 보니 안전에도 문제가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골프장측이 가능한 많은 골퍼를 수용하기 위해 팀의 라운딩 간격을 너무 좁게 잡고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또 골프장의 각종 시설이 필요 이상으로 호화롭다는 인상이었다. 샤워시설조차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간편하고 단촐한 미국과는 달리 사우나와 레스토랑이 고급스러워 부담스러웠다. 음식값도 생각보다 비쌌다. 골프장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한국에선 그래도 중류층 이상이니 그러려니 생각했지만 골프의 천국이라는 미국과는 영 분위기가 달라 거북했다.
양복 상하의를 입어야만 입장을 시키는 골프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J씨는 더욱 의아했다. 「신사 운동인 만큼 그에 어울리는 복장을 갖추라」는 뜻이라지만 「운동하러 가는데 양복은 왜?」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공원에 가듯 간편한 복장으로 골프장을 찾는 미국과는 너무나 달랐다.
늘 캐디를 동반해 라운딩을 해야 한다는 것도 그랬다. 고용의 효과는 있겠지만 이제 한국에서도 골프가 대중화하고 있는 만큼 고객이 캐디 동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골프장이 보편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장 직원이 승용차를 주차해 주고, 골프백을 내리고 실어 주는 것 등도 낯설었다.
막상 필드에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불필요하고 엉뚱한 곳에서는 지나친 대접을 받는 것이 J씨의 눈에는 모순으로 비쳐졌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부킹에 성공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인데 너무 시시콜콜 따지지 말라』며 『금방 한국 골프 문화에 익숙해질 것』이라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조재우 기자>조재우>
◎골프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들/경기보다 내기에 혈안 1타에 억대 판돈까지/도박중독증 폐해 심각/일부 관료 ‘골프친죄’로 경질 파문 겪기도
골프, 아무리 재미있다지만 무슨 스포츠든지 지나치면 해악이다.
서울에서 일식집을 하는 이모(52)씨. 그는 골프를 배웠다가 개인사업을 하는 골프친구들을 사귀게 됐고 급기야는 내기골프의 수준을 넘은 도박골프에 빠져 패가망신한 경우다. 그는 홀마다 판돈을 거는 소위 홀매치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점당 100만원으로 시작했다. 이씨는 첫홀에서부터 긴장돼 동반자 3명에게 각각 한타씩 지면서 300만원을 내야했다. 몇홀이 넘어가자 점당 「더블」 「더더블」로 판돈은 커졌고 14홀이 되자 잃은 돈이 6,000만원을 넘어 버렸다. 이성을 잃은 이씨는 마지막 홀에서 잃은 돈을 모두 거는 「엎어치기」를 제안했고 결국 1억원이 넘는 돈을 고스란히 날렸다.
전문적인 골프 도박꾼들은 이런 사람들을 노린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김모씨는 타당 판돈이 억대에 달하는 골프도박 한 번으로 공장까지 처분해야 했다. 도박꾼들은 초반에는 돈을 잃어 줬지만 홀이 거듭될수록 판돈을 올려 거액을 챙겼다. 결국 7억원을 잃었다. 골프도박꾼들의 주요 타깃은 현금이 많은 중소기업사장이나 부동산업자 등 개인사업가들. 2, 3명이 한패가 돼 「초반에 잃어주고 막판에 챙기는」 수법을 쓴다.
골프중독의 폐해는 도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사장 P씨는 기업이 쓰러지는 줄도 모르고 「골프 삼매경」에 빠진 경우. 뒤늦게 배운 P씨는 일주일에 5, 6번씩 골프장을 찾았고 종일 골프로 소일했다. 회사일은 아예 뒷전이었다. 모든 업무는 실무자에게 맡겨 놓은 채 휴대폰으로 보고를 받고 일을 처리했다. 2년이 지나자 회사가 휘청거렸고 결국 회사를 정리해야 했다.
공직자의 골프금지령을 어겨 자리를 내놓은 고위관료도 적지 않다. 지난달 경질된 중앙부처의 모차관은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자들과 골프를 쳤다가 「괘씸죄」에 걸린 탓이라는 뒷말을 듣고 있다. 모 지방자치단체 부시장도 최근 가명으로 예약해 골프를 치다 캐디에게 폭언을 한 사실까지 드러나 내무부의 감사를 받는 신세가 됐다. 모두가 지나치게 골프에 빠진데서 비롯한 일이다.<배성규 기자>배성규>
◎나의 제언/김태운 제주 파라다이스CC 대표이사/골프장 중과세 행정규제가 대중화 막는다
골프의 역사에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이정표가 있다. 1475년,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2세가 의회의 결의를 얻어 선포한 「골프금지령」이다.
잉글랜드와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이 무술연마에 전념해야될 터인데 골프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전력의 약화를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3대의 왕에 이르기까지 이 포고령은 거듭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골프금지령은 골프에 관한 최초의 역사적 기록이다.
이로부터 500여년이 흘렀다. 지금 세계의 골프붐은 모두가 익히 아는 사실이다. 이런 말이 있다. 『골프의 유일한 결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최근 몇년간 우리나라 골퍼들의 증가는 어느 스포츠도 경험해 보지 못할만큼 빠르다. 한해 1,000여만명이 골프장을 찾고 있다. 그러나 현재 개장 중인 골프장은 90개다. 이 좁은 골프장에서 연간 1,000만명이 플레이를 하자니 숨이 찰 노릇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골프장 수가 우리의 20배다.
수요공급의 불균형이라지만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족쇄가 있다. 골프장 만들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규제가 좀 풀리는가 싶더니 이제는 세금공세다. 특별소비세도 문제려니와 골프장은 다른 곳의 세금과 비교하면 취득세는 7.5배, 재산세는 17배, 종합토지세는 2.5배를 물어야 하니 누가 골프장을 지으려고 하겠는가.
세금이 아니더라도 각종 행정규제가 아직은 많다. 물론 비좁은 국토의 효율적인 개발과 환경의 문제를 도외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규제와 통제가 능사만은 아니다. 일반 대중이 큰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는 퍼블릭골프장이 많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골프에 대한 종합적인 정책과 골프장에 대한 정부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포츠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와 취미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골프의 초기 역사에서 보았듯 아무리 금족령을 내려도 골프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는 없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골프를 진정한 대중스포츠로 이끄는 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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