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발표한 「21세기 국가과제 추진방안」은 전환기에 선 국가정책의 목표와 그 저변의 에토스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철저한 시장경제화의 추구를 향한 정책적 선회의 선언이라 볼 수 있는 이번 발표는 보완장치로서의 사회적 안전망의 공급에 대한 배려를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인 부정적 파급효과는 물론, 그 정책적 자세의 독선에 의한 사회적 갈등마저도 염려되고 있다.국가정책의 종국적 목표가 삶의 질 향상에 주어져야 함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이다. 그러나 삶의 질을 구성하는 객관적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일부가 바로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안전망의 제공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려는 거대한 캠페인이 세계화, 시장경제논리 등을 앞세워 보이지 않게 진행 중인 것을 경계한다.
질병, 노령, 실업, 재해 등에 대비한 사회적 안전망의 제공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복지제도의 핵심을 이룬다. 여기에 교육서비스의 제공을 추가하여 일군의 복지기능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형태의 전형이 20세기 후반 서유럽에서 이루어졌던 복지국가이다.
지나치게 높은 조세부담률과 인구의 고령화, 10%를 상회하는 실업 등이 결국 복지국가 모형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맥락들은 우리의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21%에 불과한 조세부담률에 건전한 인구부양비율, 3%전후의 실업 등의 현실에서 유럽의 복지국가 쇠퇴를 빌미삼아 국가가 복지기능을 방기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죄악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지난 수십년간 성장의 과실이 주로 억제된 임금의 형태로 배분되어 누적적 소득불평등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부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풍요 속에서 소외계층을 양산해 온 것이다.
이제 겨우 기본적 사회보험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 놓은 상태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밑바닥을 헤매고 있다. 심지어 기업파산시 근로자의 퇴직금 우선변제의 헌법불일치 결정의 경우에서처럼 국가가 앞장서서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제한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경쟁의 논리 속에서 자신만을 돌보느라 영원히 약자를 외면하고 말 것인가.
이제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이번 대선주자들에게 복지에 관한 뚜렷한 소신과 정책이 있는지 묻고 싶다. 경쟁에서 뒤처진 약자들을 외면하는 사회는 윤리적으로 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하며 또한 비효율적이다. 바람직한 사회의 비전을 정립하기 위한 국민설득과 합의도출의 역할은 정치지도자들과 정부에 달려 있다.
유럽의 경험을 복지국가의 실패라고 보아서는 안된다. 얼마전 유럽을 휩쓴 정권교체의 바람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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