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의 왕세자비 다이애나의 죽음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이때에 현대의 성녀 마더 테레사 수녀의 서거는 우리를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한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왕실의 품위와 청순함, 이혼의 아픔과 염문, 에이즈 퇴치운동과 앙골라 내전지역에서의 봉사활동 등으로 세인의 사랑과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이면에는 「원죄의 인간」인 이브의 후예로서 인간성의 연약하고 어리석은 여러 면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그렇지만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난 이 할머니 수녀님은 인간적인 면모대신 신적인 사랑으로, 그것도 이 세상에서 가장 버림받고 잊혀진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화신으로 종교를 초월하여 온 세상의 존경을 받은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이 분을 「구원받은 존재」인 새로운 이브의 후예로서의 인간조건을 실현한 여성이라고 표현한다면 너무나 지나친 것일까?
나는 한번도 개인적으로 마더 테레사를 만나뵌 적이 없다. 있다면 이분이 81년 한국을 방문해서 명동 대성당에서 강연했을때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이가 뛰놀았다(루가 1,41)』라는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어머니 태중의 아이도 하느님을 찬미하는 소중한 존재이며 인격체라는 호소를 하셨을 때이다. 그때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분의 뜻과 카리스마를 이어 받고자 오래전에 설립된 「사랑의 선교수사회」 서울 삼선교 본원에 가끔 들러 거리에 버려진 행려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시는 수사님들을 만나면서 수녀님의 영성의 빛을 접하곤 한 적이 있다. 또한 10년전 프랑스 유학생활의 마무리를 1주일간의 캘커타 방문으로 정하고 그곳에서 지냈던 추억들이 영적 체험으로 자주 떠오르곤 한다.
테레사 수녀님의 손길과 얼이 깃든 여러 빈민가를 둘러 보고, 특히 영화 「시티 오브 조이」의 실제적 배경인 하오라 빈민가에서 모기에 뜯기고 시달리며 잠을 자던 기억들…. 캘커타의 빈민가를 취재하며 신으로부터 저주받은 곳이라는 절망감을 느꼈던 도미니크 라 피에르기자(르 피가로지)가 가난한 주민들안에 깃들여 있는 삶의 기쁨과 희망에 눈뜨면서 이곳이 신의 축복이 서려있는 「환희의 도시」임을 발견한다는 영화의 내용은 그 곳에 삶의 현실로 살아 있었으며 지금도 내 마음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다.
테레사 수녀님은 사실 오랜 기간동안 인도 귀족들의 자녀를 교육시키는 수녀회의 교육자로 헌신하며 수도자로서의 보람을 찾았다. 어느날 높은 수도원 담장밖 거리를 걸어가다가 길거리에서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참함을 바라보며 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에 눈뜨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는 정든 수도원을 나와 이 미소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다가가고 헌신하는 새로운 수도자의 삶을 시작한다.
이는 종교의 역사 안에서 무수한 성인 성녀의 회심의 과정과 흡사하며, 교회의 쇄신과 새로운 수도회 창설의 의미가 이 세상 안에서 버려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눈뜸과 애정에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 이유는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은 특별히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 안에서 드러나며 인류의 구세주 메시아는 이 사람들을 당신과 동일시하였기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의 빈자에 대한 사랑의 특징은 어떤 제도적이고 구조적인 불의의 문제를 개선하는데 있다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무조건적인 사랑의 실천에 있었다. 그러기에 이분의 활동은 국경을 넘고 민족과 피부색, 이데올로기의 장벽까지도 넘을 수 있었고 인도주의적 사랑을 위해서는 어디도 마다하지 않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만나고 호소하는 적극성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종교의 벽을 넘어 모든 이에게 사랑받고 추앙받는 「살아있는 성녀」가 되었던 것 같다.
그의 구부정한 허리, 깊게 주름잡힌 얼굴에서 자녀의 배고픔과 굶주림을 가슴 아파하고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자애로운 어머니의 품, 모성애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자애로운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처럼 이 시대에 「구원의 여인」으로 우리 곁에,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 곁에 영원히 현존하리라.<가톨릭노동청년회 지도신부>가톨릭노동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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