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입적한 불국사 조실 월산 스님은 우리나라 불교의 선맥을 계승한 선승이다.만공 스님에게서 받은 『이 뭐꼬.』라는 화두를 놓치지 않고 간직해 온 스님은 예산 수덕사가 본산인 덕숭문중중 가장 큰 어른으로 존경받아 왔으며 그가 토해내는 사자후는 토함산 자락을 울려퍼지며 한국 선종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함남 신흥이 고향인 스님은 1943년 경기 망월사에서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90년을 전후해 스님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종정 물망에 오르는 바람에 자신이 속한 덕숭문중과 성철 스님의 범어문중이 치열하게 대립,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했다.
스님은 당대의 선승답게 특이한 선풍으로 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늘 『내 사상은 참선뿐이야. 이것 만큼은 죽을 때까지 할거야』라고 말해왔던 스님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될 때 깨달음의 길에 도달할 수 있으며, 선이란 해탈과 자재를 여는 요체라는 법문을 내리곤 했다.
스님은 또 『일체를 초월해서 일체를 여의지 않는다』는 중도관을 펼쳐보였으며 제자들에게는 무엇보다 자기의 본래 마음자리부터 찾으라고 가르쳐왔다.
스님은 불교계를 뒤흔들었던 돈점논쟁에서도 초연한 입장을 견지했다. 순천 송광사와 합천 해인사가 깨달음에 대해 돈오점수 돈오돈수를 놓고 설전을 벌일 때도 『돈오돈수면 어떻고 돈오점수면 또 어떤가. 누가 내게 와서 어느 게 옳으냐고 하면 나는 그런 거 모른다고 할거야. 다들 부질없는 짓이지』라며 제 갈길을 홀로 걸었다.<이기창 기자>이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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