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이와 늘 함께했던 그분/우리 가슴속에 영원한 등불로6일 새벽 「사랑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가 우리를 떠나셨다.
3년전 우리가 시작한 테레사 수녀의 다큐멘터리 제작은 당시 상황으로는 불가능한 여건속에서 이루어졌다. 「사랑을 위하여 이 아름다운 일을」. 테레사 수녀는 어떠한 절망적인 순간에도 그렇게 말씀하시며 모든 일을 이루어내셨다고 전기에 적혀 있었다. 94년 12월5일. 30여년을 다닌 직장에서 정년퇴임식도 못치르고 나는 제작팀과 함께 인도 캘커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멀고도 먼 나그네길의 순례자처럼 우리는 테레사 수녀의 도시, 캘커타에서 아침미사를 올릴 수 있었다. 길가에는 쓰레기 더미와 함께 굶주림과 병으로 쓰러진 가난한 사람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그런 세상 한가운데 테레사 수녀 또한 그들처럼 가장 가난한 이가 되어 그들을 위해 살아가고 계셨다.
모원의 성당은 작고 초라했다. 의자도 장궤틀도 없이 바닥에는 값싼 포대가 깔려 있을 뿐이다. 텅빈 성당. 제대 뒤의 그리스도, 테레사 수녀가 꾸며 놓은 모든 성당에는 목마른 그리스도가 십자상 위에 홀로 계셨다.
『나는 목마르다(I thirst)』, 『나는 목마르다』, 『나는 목마르다』
목마른 그리스도를 찾아 사랑의 전달자가 되는 것이 테레사 수녀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 수녀원의 지향이고 목표이다. 아침 4시30분에 기침하면 30분의 새벽묵상을 미사전에 행하고 밤 10시 취침전에 1시간의 기도를 한다.
테레사 수녀는 일하면서 기도하는 수도생활을 해오셨다. 테레사 수녀는 결코 일이나 활동이 기도를 멈추게 하지 못하고, 기도가 일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그 비결은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안에서 실제로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만나 뵐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아주 수월하게 말씀하신다.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은 매일 아침 미사가 끝나기 무섭게 빨래를 한다. 수녀들이 모두 나와 빨래를 하는 모습은 정말 진풍경이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 수녀원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수녀원이다. 수녀원에 입회를 하면, 누구나 다 두벌의 수녀복과 양동이를 받는다. 그것이 수녀가 지닌 재산의 전부다.
꽃송이와 향불로 시바신을 경배하는 칼리사원! 나는 그곳에서 기이한 현상을 목격했다. 사원의 돔 한쪽 지붕에 십자가가 있었다. 결코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지붕아래 바로 테레사 수녀가 돌보는 버려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46년 테레사 수녀가 처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의 첫발을 내디뎠을 때, 테레사 수녀는 칼리카트 지역을 선택했다. 주변에서는 회교도들을 그리스도인으로 교화시키기 위한 무모한 일을 한다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는 알고 있었다.
도시에서 버려진 많은 노인들과 행려환자들이 죽기 위해서 칼리카트 사원을 찾는다는 것을! 테레사 수녀는 티티가라에 있는 나환자들의 문드러지고 고통스런 모습에서, 산디단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버려진 여자들의 얼굴에서, 그리고 낙태로 인해 죽어가는 어린 생명들 속에서 목마름에 고통당하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뵙는다.
테레사 수녀는 오늘날 두 종류의 가난이 있다고 하셨다. 하나는 돈이 없고 빵이 없어 질병과 기아로 죽어가는 가난한 이들의 육신적 고통과 버림받고 잊혀져서 정신적으로 삶을 박탈당하는 소외된 사람들, 그들의 가난이 전자보다 더욱 비참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테레사 수녀의 사랑과 봉사의 사업은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나눔의 정신을 강조하는 테레사 수녀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매일 죽어가고 있는 이 지구상에 가장 가난한 이들 가운데 놀랍게도 바로 그리스도를 만나뵙는 생활을 체험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 당신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주님 당신이 나를 부르셨습니다. 저를 선택해 주신 분은 주님 당신이십니다. 밤이나 낮이나 작은 등에 불을 켜고, 부르심을 기다렸습니다. 비로소 주님은 저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하느님에게 첫 서원 때 드렸던 기도를 다시 바치시며 우리를 떠나셨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테레사 수녀는 꺼지지 않는 이 시대의 등불로서 우리 곁에 계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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