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년에 세상을 떠난 재일 한국인 2세 여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애창곡 중에 「강물이 흘러가듯이」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듣고 있는 중에 가사 한 구절이 가슴에 문득 사무쳤다.<…지도조차 나오지 않는, 그것이 바로 인생…>
이 노랫말의 지은이는 지도가 없어서 인생살이가 퍽 고달펐음인가.
이 노랫말에 대한 필자의 느낌은 양가적이다. 감성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이성적으로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사실과는 다르게 여겨지더라는 것이다.
『지도가 없기는 왜 없어?』
이것이 이 노랫말에 대한 나의 이성적인 반응이다.
방송에 나갔더니 한 아나운서가 필자에게 『방랑벽이 있는 거 아니세요. 나라를 자주 드나드시잖아요』라고 물었다.
천만에요. 나는 서음증 환자라서 방랑은 못해요. 몇백권의 책이 옆에 없으면 당장 생업에 지장을 받는 사람인데 방랑벽이라니 당치 않아요. 방랑요? 하고 싶지요. 책 확 불싸지르고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많지요. 하지만 사람은 근기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장자」에 나오는 윤편도, 「벽암록」에 나오는 선승 현감도, 「한비자」에 나오는 왕수도 아닌 것을요.
각설하고, 「장자」에는 윤편이라는 목수가 감히 제나라 환공에게 책의 무용론을 펼치는 얘기가 나온다. 윤편의 주장인즉 이렇다.
『수레바퀴 깎는 일로써, 성인이 쓴 책이 어째서 성인이 남겨놓은 찌꺼기인지 설명하지요. 바퀴 깎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굴대 구멍 깎는 일입니다. 왜 어려운가 하면, 너무 넓게 깎아 놓으면 굴대를 끼우기는 쉬워도 헐렁해서 바퀴가 심하게 요동하고, 너무 좁게 깎아 놓으면 굴대가 빡빡해서 못쓰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저는 마음 먹은 일을 손으로 잘 할 수 있어서 크지도 작지도 않게 굴대 구멍을 깎을 수 있습니다. 깎을 수는 있어도 이것을 언어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기술을 전하지 못하듯이 공께서 읽으시는 성인도 정말 전하고 싶어하던 것은 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니, 그 책에 쓰여있는 것은 성인이 깨달은 바의 찌꺼기 같은 것이 아닐는지요?』
선승 현감이 승신 스님이 주석하는 용담사에서, 한동안 짊어지고 다니던 「금강경」을 불싸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빙이라는 은자는, 책짐 지고 공부하러 가는 왕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책이라는 것은 사람이 쓴 것이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한 시대에 얽매이지 않는 법인데 그대는 어찌 그리도 많은 책을 지고 다니는가?』
이 말에 퍼뜩 깨달은 바가 있었던 왕수는 그 자리에서 책을 불살라 버리고 책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혹 게으른 기서가들이 있어서 이 세편의 삽화를 독서무용론의 논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윤편과 현감과 서빙이 펼치는 것은 독서 무용론이 아니다. 책이 없었던들 우리가 무슨 수로 이 지극한 진리를 접할 수 있었을 것인가? 지극한 진리는 문자로써 전할 수 없다(불립문자)는 뜻이지 독서무용론이 아닌 것이다. 지극한 진리를 궁구하지도 않는 주제에 시건방지게 독서무용론이라니.
책은 인생의 지도다. 독도법과 씨름도 해보지 않고, <…지도조차 나오지 않는, 그것이 바로 인생…> 운운 할 일이 아니다.
지극한 진리와 인연이 없어서 나에게는 읽어야 할 책이 많다. 나에게는 한꺼번에 다 읽어버리기 싫어서 밤참 먹듯이 잘금잘금 읽은 「세설신어」같은 책이 있다. 아직도 읽어야할 지도가 많아서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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