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보유고 급감따라 당국 운신폭 좁아져외환당국의 환율관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4월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여왔던 외환보유고가 8월들어 급격히 빠져나감에 따라 요동치는 외환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외환당국의 「운신폭」은 한층 비좁아지게 됐다.
외환보유고란 중앙은행이 갖고 있는 「환율조절용 실탄」이다. 중앙은행은 자국통화의 환율이 너무 오르면 달러를 풀고 반대로 환율이 너무 떨어지면 달러를 사들임으로써 환율요동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지난달 외환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한 것도 환율진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보유달러를 대거 방출했기 때문. 기아사태이후 대외신용도 추락으로 해외차입이 봉쇄되면서 국내 금융기관들이 심각한 외화자금난을 겪게 되자 한은은 외환보유고를 풀어 금융권에 12억달러를 응급 수혈했다. 특히 7월말 달러당 892원에 머물렀던 원화의 대미달러환율이 「1달러=900원벽」을 깨뜨리며 천정부지로 치솟자 한은은 이를 저지키 위해 보유외환을 계속 풀었다.
현재 외환시장은 단순한 달러의 「실수요」초과가 아닌 「가수요」에 의한 환투기세력과 중앙은행간 대결국면을 보이고 있다. 한 외환딜러는 『일단 외환당국의 환율조절능력이 없다고 판명되면 환율은 걷잡을 수 없이 치솟는게 속성』이라며 『가수요의 증가속에 환율움직임은 점차 중앙은행의 방어능력을 시험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앙은행의 방어수단은 곧 외환보유고다. 외환보유고가 넉넉해야만 달러를 풀어 가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외환보유고의 격감은 오름세에 가속도가 붙은 현재의 환율안정에 「적신호」일수 밖에 없다. 태국도 외국 헤지펀드(핫머니)의 집요한 바트화 투매공세에 외환보유고 방출로 맞서다가 5월 한달간 보유외환수위가 40억달러나 낮아지는 등 「방어능력」이 소진되면서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
한편 외환보유고는 단기적인 환율조절수단외에 「국가의 대외적 신뢰척도」란 보다 중대한 의미도 갖고 있다. 한 국가가 갑자기 대외지급불능사태에 빠졌을 때 외환보유고는 최종적 지불재원이 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각국에 외환보유고 수위를 3개월간 경상수입액(우리나라 360억∼370억달러) 이상으로 유지토록 권고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311억달러의 우리나라 외환보유고는 IMF 적정권고치에 못미친다. 싱가포르(720억달러)나 대만(850억달러)보다 훨씬 적다. 특히 남북긴장상황속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 통일과 이에 따른 막대한 통일비용 등 「돌발변수」가 많은 우리나라로선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재정과 외환보유고만은 넉넉하게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규영 한은국제부장은 『기아사태 후유증과 일본계은행의 결산 등 악재로 이달까지는 외환보유사정이 넉넉치 않겠지만 경상수지적자가 점차 개선되고 외국인투자한도확대 등 자본시장이 추가로 개방되면 10월이후 외환보유고는 다시 증가세로 반전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외환위기 가능론/“통화불안은 심리요인이 좌우/강건너 불 아니다”
「외환위기는 있을 수 없다」는 정부의 장담과는 달리 금융계에는 「외환위기가 강건너 불만은 아니다」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들은 먼저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이 「외환위기 불능론」의 근거로 제시하는 각종 거시경제지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경제의 거시지표가 멕시코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그것보다 수치상으로 양호하다는 점을 「외환위기가 없다」라는 결론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논리의 비약」이라는 것이다.
대우경제연구소 한상춘 연구원은 『거시경제지표로 외환위기를 진단하는 것은 고전적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와는 달리 국제외환시장을 떠도는 유동자금중 80%이상이 투기적 성격인 90년대에는 경제주체들이 「불안하다」고 느낀다는 사실, 즉 심리적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연구원은 『한보·기아사태 등 잇딴 대기업부도에 따라 국민모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게 사실인 이상 정부는 이미 외환위기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환위기 가능론」의 또다른 근거는 수출부진에 따른 경상수지적자 확대이다. 산업은행은 최근 「동남아 통화불안의 실상과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수출의 15.6%(액수 202억달러)를 차지한 동남아시장이 외환위기로 위축될 경우 서울외환시장의 달러수급균형을 뒤흔들어 외환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조철환 기자>조철환>
◎외환위기 불능론/“태·멕시코와 달리 대외지급 능력 외환수급 이상무”
재정경제원은 5일 외환보유고 감소와 환율상승에도 불구,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지급능력에는 큰 어려움이 없으며 외환위기도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경제여건이 호전되고 있고, 경상수지가 2·4분기이후 개선되고 있어 외환수급에 문제가 없으며, 따라서 국내에서 멕시코나 태국과 같은 외환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전무하다는 것이다.
특히 재경원은 외환위기와 직결되는 대외지급능력과 관련, 이날 작성한 「최근 외환보유고 동향 및 평가」란 자료에서 『일반적으로 외환보유고가 월수입액의 2.5―3개월 수준이 적정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라며 『4월이후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는 월평균수입액의 2.5―2.8개월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대외지급준비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재경원은 경상수지 적자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올해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160억달러, 성장률은 6.0%로 각각 예상됨에 따라 작년의 4.9%에서 올해는 멕시코와 태국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3% 수준으로 크게 개선될 전망이어서 동남아 국가들과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사상최고치를 기록한 환율에 대해서도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적정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며 『만약 동남아는 물론 일본 등 경쟁국의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있는데도 우리만 절하가 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큰 낭패를 겪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김경철 기자>김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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