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근로기준법상의 퇴직금 우선변제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후 근로자의 불안과 동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고 우선변제범위를 놓고 이해집단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노동계는 우선변제범위기간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고 재계나 금융계는 최소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동계는 근로기준법에 퇴직금우선변제조항이 들어간 89년 이후를 기산점으로 헌재결정이 나온 8월21일까지 약 8년을 최소한의 우선변제기간으로 보고 있다. 반대측은 소기업지원특별법을 근거로 3년을 내세우고 있다. 정부는 노사개혁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유보적 자세이나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인 5∼6년을 내심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여기서 우리는 어느 편의 주장이 타당한가를 떠나 퇴직금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번 정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퇴직금은 대부분의 근로자들에게 노후의 생계를 영위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퇴직금은 직장에 청춘을 불사르고 평생을 헌신한 월급쟁이들에게 마지막 권리이자 꿈이다.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고 사회의 안정판 구실을 해왔던 평생직장이라는 의식과 문화가 하나의 덕목으로 우리 사회에 착근할 수 있었던 것도 퇴직금제도의 기여가 적지않다고 본다.
이같은 사회 문화적 접근을 떠나 퇴직금 우선변제가 헌법불합치라는 헌재의 결정배경이나 그후 이를 계기로 재계나 금융계가 내세운 주장에 대해서도 적지않은 이견이 있다.
결과적으로 퇴직금우선변제문제를 몰고온 연쇄적인 기업부도의 근본 원인은 대부분 기업의 과도한 차입과 문어발식의 방만한 경영에 있다는게 정책당국이나 재계 스스로의 결론이다. 수백, 수천 퍼센트의 부채비율도 모자라 근로자의 최후의 생계수단인 퇴직충당금까지 금융기관에 저당을 잡힐 정도의 경영이라면 부도나 파산의 일차 책임은 경영층에게 있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퇴직금을 제외하고 담보가 부족할 정도라면 금융기관의 여신심사기능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또 기업부도시 채무자의 은닉재산 등에 대한 추적작업은 얼마나 제대로 했는지도 의문이다. 담보 우선의 금융관행은 신용위주로 가야 한다는 정책방향과도 뒤틀어진다.
이제 정부의 결단이 남아있다. 최선의 대응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퇴직금의 우선변제를 회복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정부나 법조계가 이를 위해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차선책이라면 일단 법개정시 노동계가 주장하는 8년을 수용하되 시행령을 통해 여건의 변화를 고려한 신축적 대응도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퇴직금중간정산제도의 보완과 퇴직보험제도의 시행 등을 조속히 마무리지어야 할 것이다. 퇴직보험제도는 가입자의 이익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보험사 외에 일반 금융기관의 참여 가능성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