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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시네마 뉴웨이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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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시네마 뉴웨이브:1)

입력
1997.09.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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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박한 줄거리… 철저한 형식파괴… 기존영화에 반기/비디오가게 점원 출신/펄프픽션으로 ‘칸’ 대상21세기 문화의 총아는 뭐니뭐니해도 영상이다. 영상은 불과 1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모든 예술장르를 아우르는 용광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영상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현재의 모습을 살피는 것이다. 90년대 영화계 거장의 작업을 통해 미래의 영상예술을 조망하는 특집을 마련했다.<편집자 주>

영화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의 첫 장면. 여섯명의 보석강도가 술집에 모여앉았다. 『마돈나의 노래 「처녀처럼(Like A Virgin)」은 경험많은 여자가 갑자기 처녀 행세를 한다는 뜻이야』 『무슨 소리, 그건 말야. 매일밤 좀 더 나은 파트너를 찾아다니는 섹스머신의 이야기야. 걔가 어느날 「물건」이 엄청나게 큰 녀석을 만나서 처녀처럼 아픔을 느꼈다는 뜻이라구』.

「펄프픽션」의 줄거리. 깡패두목 마르셀러스의 부하 줄스와 빈센트는 배신자를 총으로 쏴죽인다. 마르셀러스는 휴가 동안 아내 미아를 돌봐달라고 빈센트에게 맡기며 절대 여자를 건드리지 말 것을 경고한다. 한편 권투선수 부치는 마르셀러스에게 일부러 지는 경기에 나가서 돈을 받으라는 제안을 받고 링에 오른다. 부치는 그를 배신하고 도망치다 빈센트를 죽인다. 부치와 마르셀러스는 우연히 게이 경찰관의 지하실로 잡혀들어가 강간을 당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빈센트와 줄스가 돌아오는 길, 줄스는 총알이 자기를 피해간 건 하늘의 계시라며 앞으로는 깡패 생활을 안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영화의 첫장면에 나왔던 좀도둑 커플이 다시 나오며….

도무지 천박하기만 하고 앞뒤를 알 수 없는 줄거리. 「닥터 지바고」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영화 세대들이 보기엔 허접쓰레기에 영화 같지도 않은 영화. 그러나 이것은 미안하게도 세기말을 향해가는 90년대의 영화를 대표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걸작」들이다.

92년 「저수지의 개들」로 선댄스 영화제에 등장, 「헤모글로빈의 시인」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충격을 던져준 타란티노. 94년 「펄프 픽션」의 칸 영화제 대상 수상으로 실력을 공인받는다. 영화의 형식을 파괴하고 싸구려 문화들을 끌어모아 새로운 쾌감를 만들어낸 그는 영화사상 최고의 혁명가인 60년대 장 뤽 고다르 이후 가장 큰 충격을 던져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뉴욕파니, LA파니 하는 학구파 감독들이 세를 가르고 있는 미국 영화계의 판국에서 정식 영화교육을 받지 않은 비디오 가게 점원 출신이라는 점 또한 신화의 일부가 됐다.

그는 문학 같은 예술장르에 열등감을 느끼며 영화를 고급예술로 도약시키려 했던 이전 세대들과는 달랐다. 그는 영화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당당히 대중문화임을 선언했고, 이것은 한치의 열등감도 배제된, 당당한 자의식의 발로였다. 영화는 고급 예술일 필요가 없다!

비디오가게 점원 시절, 온갖 영화를 섭렵하며 머리에 이들을 집어넣은 그의 영화 속에는 갖가지 영화 전통이 짜집기 돼 있다. 폭력 영화의 대부인 샘 페킨파, 브라이언 드 팔마, 마틴 스콜세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영화에 심취했다는 그는 이들에게서 갱스터 영화의 전통을 이어받는다. 여기에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 오우삼의 「영웅본색2」, 스탠리 큐브릭의 「킬링」, 토비 후퍼의 공포 영화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2」의 이미지를 합치고 이를 다시 고다르적인 형식 실험으로 엮어낸다.

그 결과 그의 영화는 어디서 본 듯하지만 뭔가 다르다. 더구나 중간부터 시작되어 끝으로 가다 다시 처음으로 가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순서로 관객을 이끈다. 그 속에 피칠갑이 된 유머러스한 폭력의 미학이 독창적으로 찬연히 빛난다. 그의 작업은 단순히 여러가지 이미지들을 끌어모은 패스티시(혼성모방)에 그치지 않는다. 기존의 것들을 철저히 전복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패러디의 승리였다. 그는 관객을 일방적인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감독과 한판 게임을 즐기게 해준다. 이러한 철저한 계산은 일견 반지성적으로 보이는 그의 영화가 얼마나 지적인 노력의 결과인지를 보여준다.<이윤정 기자>

◎팀 로스·존 트래볼타·하비 케이텔 등/‘타란티노 사단’ 막강파워

타란티노의 위력은 단지 그가 훌륭한 감독이라는데만 있지 않다. 그는 시나리오작가, 배우, 또 제작자와 배급자로도 활약하며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대 인맥을 이끄는 「타란티노 패밀리」의 교주이다.

타란티노 패밀리의 일등공신은 돈이 없어 감독을 할 수 없었던 그에게 「저수지의 개들」 제작비를 대줘 그를 데뷔시킨 명배우 하비 케이텔이다. 70년대 마틴 스콜세즈의 초기작에서 콤비로 활약하다 로버트 데 니로에게 밀린 그는 이어 「펄프 픽션」에도 출연하며 신예감독 타란티노의 파트너가 된다. 이밖에 그의 영화에 즐겨 출연하는 스티브 부세미, 팀 로스, 비디오가게 동료로 「펄프 픽션」을 공동집필한 로저 애버리, 「포룸」을 같이 감독하고 자신의 작품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타란티노를 제작, 각본, 주연으로 활약시킨 로버트 로드리게스, 선댄스영화제 동지 알렉스 록웰 등이 주요 멤버.

누구보다도 타란티노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스타는 「펄프 픽션」의 존 트래볼타. 70년대 「토요일밤의 열기」이후 몰락해가던 그를 타란티노는 최고의 배우로 치켜세우며 새롭게 탄생시켰고, 그는 이 영화 이후 일급배우로 거듭난다. 트래볼타는 『타란티노는 나에게 예술가로의 도전의식을 일깨워 준 사람』이라며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평/예상깬 반전/지독한 유머의 폭력영화

무절제한 유혈극? 아니다. 폭력은 폭력이되 그의 영화는 지독한 유머의 폭력이다. 극한의 희극적 상상력이 가격하는 대상은 장르의 관습, 시멘트처럼 굳어버린 영화관람의 습관이다. 하드보일드 갱스터의 근엄한 포즈에 그의 영화는 심취하지 않는다. 그 폼을 유지하려는 우스꽝스런 노력에 관심을 가질 뿐이다. 폭력의 재현, 그 케케묵은 방정식의 틀을 뒤집어 흔드는 유희의 정신. 이게 타란티노 영화의 핵심이다. 그러니 이 발랄한 상상력의 트위스트를 우수어린 눈으로 근심하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네개의 장면을 보자.

「펄프 픽션」에서 두목 마르셀러스는 폭군 그 자체다. 그는 부치(브루스 윌리스)를 근엄하게 협박한다. 5라운드에 쓰러져서 챔피언벨트를 넘겨주라고. 이 때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포착하지 않는다. 들리는 건 착 내리깐 두목의 목소리, 그리고 차마 대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부치의 얼굴. 몇 컷이 더 흐른 다음에야 관객은 두목의 뒤통수를 볼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우람찬 귄위의 표상! 그러나 자존심을 잃고 망신을 당하는 건 부치가 아니라 두목이다. 변태성욕자의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흘러내린 바지, 노출된 엉덩이, 낑낑대는 보스, 강간당하는 암흑가의 일인자. 할리우드에서 여지껏 이런 갱영화는 없었다.

킬러 빈센트의 상황은 또 어떤가. 실수로 오발을 해 인질을 죽인다는 상황 자체도 갱의 프로페셔널한 노련미를 훼손시키지만, 그 뒤의 모습은 더욱 가관이다. 피묻은 옷을 벗고 스누피 티셔츠에 반바지를 걸친 살인마라니. 한명도 아니고 두 명이 멀뚱하게 서 있는 그 장면은 잔인한 갱을 졸지에 「영구」와 「덤 앤 더머」로 만들어버린다. 우스운 추락이다.

「저수지의 개들」의 오프닝신은 의미심장하다. 아침식당에 모인 갱들의 화제는 그날의 보석 강탈전이 아니라 시시껄렁한 음담패설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이런 한담을 음험한 모의인 양 연신 트랙이동으로 포착한다. 다음 장면은 팁 1달러를 떼먹으려는 좀팽이 갱과 다른 갱 사이의 팽팽한 논전이다. 어이없는 포석이다. 그리고 보석사건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중반부터 갱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는데 그 꼴이 또 볼만하다. 주차를 잘못해서 죽은 갱, 『우린 전문가야』라고 외치며 불안에 떨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아마추어처럼 죽는 갱, 엉엉 울며 죽어가는 밀정…. 그리고 이 피투성이 코미디의 마지막에서 갱 모두는 서로를 의심하며 총을 겨누다 전멸한다. 요컨대 타란티노는 폭력의 스펙터클을 가지고 논다. 반영의 유희인 것이다.<김정룡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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