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을 통들어 최대의 작가로 횡보 염상섭(1887∼1963)을 꼽기에 망설일 사람은 많지 않다. 대가급 작가인 까닭이다. 작품의 분량이 많아야 하고, 또 작가 생애가 길어야 함이 그러한 대가적 조건에 관여되는 것이라면 단연 염상섭 오른편에 나설 작가는 없다. 장편만도 무려 28편에 수백편의 단편과 평론조차 갖추고 있기에 그것은 그러하다. 그러나 분량과 창작 생애만이 대가적 조건의 전부일 수 없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 그렇다면 무엇이 또 문제일까. 원리적으로 말해 다음 세가지 조건이 제시될 수 있다.그 하나는 이른바 풍격이라는 것. 설명하기 쉬운 표현은 아니나 풍격이란, 윤리적 감각에 속하는 항목. 곧 인간스러움의 위엄에 어울리는 어떤 감각이다. 사람에 따라 절제의 정신(미학)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 기품이란, 근대문학 속에서는 쉽게 찾아지기 어려울 때가 많다. 비서구권의 근대화 속의 문학에서는 특히 그러한데 왜냐하면 개성과 공동체의 갈등이 유독 첨예한 까닭이다. 다른 하나는 국어를 연마한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한데, 어떤 사항에 대해 문제적이라는 점이 그것. 카프문학이 이를 대표한다.
기품이냐 문제적이냐에서 볼 때 염상섭문학은 어떠할까. 이렇게 묻는 사람들에게 염상섭 문학이 해답 하나를 스스로 제시하고 있어 인상적이다. 기품과 문제적임의 분리 불가능이 그것. 염상섭이 가장 본질적으로 당대의 카프문학을 비판한 것이 그 증거이다.
염상섭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문학사와 비평연구회」가 이를 기리기 위한 심포지엄을 가졌다. 우리가 길을 간다고 치자. 앞에 커다란 산맥이 가로 놓였다고 치자. 한참 가다가 문득 되돌아 보았다고 치자. 문득 사람들은 앞을 가로막던 그 산맥 뒤로 우람하게 솟아오르는 산맥에 마주칠 것이다. 이 산맥의 존재 확인을 가능케 함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나아가고 있음이 그 조건이다.
이른바 세계화. 이번 심포지엄의 초점이 여기에 맞추어져 있었음을 새삼 말할 것도 없다. 그 결과로 드러난 양상은 어떠했을까.
염상섭이 국제적 감각을 가진 문사였다는 점이 어느 수준에서 밝혀졌다(김재용 교수). 염상섭은 개성을 소화해 내지 못하고 계급성쪽으로 달려가는 카프문학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개인의 위엄과 민족의 자리를 소홀히 한 민족주의쪽에도 비판의 시선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선 자리는 어디인가. 근대를 긍정하되 제3세계의 시선을 도입함이 그것. 종래의 중산층 가치 중립성의 논법보다 유연한 해석이라 할 것이다. 루카치의 개념의 하나인 「환멸의 낭만주의」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어떠할까(서영채 교수). 가치관을 깡그리 제거한 이른바 서사구조론의 시선에서 보면 어떠할까(김경수 교수). 특정작품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서사이론을 도출하고 이를 하나의 일반론으로 발전시킨 G 주네트의 서사론에 견줄 수 있는 가능성도 능히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염상섭 문학이란 그러니까 연애소설의 한 전형으로 규정되는 것이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치기엔 염상섭 문학은 너무 컸다. 기독교에 대한 지속적인 염상섭의 비판도 문제적 상황이었다(이동하 교수). 그런 염상섭이 어째서 만년 가톨릭에 입교했던가. 문제를 제기한 논자도 이 장면에서 침묵했다. 불가사의한 일일까.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한 이 장면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6년간의 설득의 결과였음이 밝혀졌다. 방청석에 나온 한 수녀의 증언이 그것.
이 심포지엄에서 제일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을까. 그 누구도, 어떤 확신의 발언을 할 수 없었음이 그것. 작품을 논하는 마당이기에 원리적으로 그러한 면이 있음은 모두 아는 일. 문제는 이러한 것에만 있지 않았다. 완벽한 염상섭 전집이 없음에서 말미암았던 것. 문화유산의 해에 겪는 이 전집 부재가 안타까웠다.<문학평론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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