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사태가 갈수록 꼬여 가고 있다. 뾰쪽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최첨단 장비를 갖춘 명포수들이 「병든 호랑이」 한마리를 생포하지 못한 채 산속을 헤매고 있는 형국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기아사태는 당사자들의 잘잘못을 떠나 아주 중요한 정책적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첫째는 기아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부당국(재정경제원)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이다. 기아의 힘은 국가기간산업인 자동차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국민경제인질론 자해공갈론 등 험악한 말이 나도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정부로서는 부도처리와 같은 「과격한 조치」를 함부로 취하기 어렵다. 자칫 국민경제를 사지로 내몰 수도 있다. 기아가 『내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면 정부로서는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다. 기간산업이 없는 진로나 대농과는 차원이 다르다.
둘째는 「병든 호랑이(미들급)」에 불과한 기아의 파괴력이 이럴진대 삼성 현대 LG 대우 등 「혈기 왕성한 호랑이(헤비급)」의 파괴력은 얼마나 클 것인가이다. 「빅4」그룹은 저마다 국가기간산업을 3, 4개씩 영위하고 있고 종합상사 금융업 유통업 언론까지 보유하고 있다. 빅4의 파괴력은 정말 가공할만하다. 기아의 10배도 넘을 것이다. 만약 빅4와 정부가 기아처럼 정면대치할 경우 정부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병든 호랑이 한 마리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끔찍한 기분이 든다. 빅4라고 기아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기아사태는 기아그룹의 문제인 동시에 한국재벌의 문제다. 기아사태가 주는 진정한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아사태는 지금의 재벌구조가 지속될 경우 자칫 기아사태보다도 더 큰 재앙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 주고 있다. 기아사태를 기아라는 특정기업의 문제로만 파악, 해법을 찾으려할 경우 기아사태 하나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도 또다시 제2, 제3의 기아사태가 줄을 잇게 할 수 있다. 정부당국은 기아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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