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작이 뒤늦게 각광… 출판사선 땅치기도/‘게임오버 수로바이러스’‘아버지’ 등 숱한 에피소드요즘 문단에서는 작가들도 「스타」로 탄생한다.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보석같은 작품 한편으로, 작가는 여타 대중문화 분야의 스타 못지 않은 각광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도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탄생 과정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재미있는 일화들이 숨어 있다. 신문사 신춘문예가 사실상 유일한 등용문이었던 시절이 가고 출판사나 문학전문지의 공모가 이에 못지 않은 화려한 등단창구로 나서면서 이런 일화들이 심심찮게 나온다.
최근 촉망받는 신세대작가로 등장한 김설(27)씨의 화제의 장편 「게임오버 수로바이러스」(문학과 지성사 발행)는 당초 올 제2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에 「천금옥」이라는 제목으로 최종심에 올랐다 아깝게 떨어진 작품. 한바탕 미로게임 같은 사건에 휘말리는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소설제목과 같은 「천금옥」이었으나 「게임오버…」에서는 「천수로」로 바뀌었다. 김씨의 작품은 『아주 색다른 재미를 끌어내고 있다』는 칭찬과 함께 『소설이 고유하게 지닌 형상화에 다소 어긋난다』는 평을 받고 최종심에서 낙선했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격찬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공동서평에 따른 익명성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월간 「현대문학」의 서평란 「죽비소리」에서 도마에 오른 김호경(35)씨의 「낯선 천국」. 이 작품도 당초 타 문학상에 응모, 낙선했다가 민음사 주관으로 많은 문제작과 작가들을 배출한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당선됐다. 「죽비소리」는 「낯선 천국」을 『습작 수준도 안되는 작품을 수상이라는 화제성을 계기로 근사한 상품으로 만들겠다는 출판사의 이벤트 마인드가 앞장을 서고…』라며 혹평, 작품 자체는 물론 「오늘의 작가상」을 매도하고 나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출판사로서는 오랜 습작기간을 거쳐 일궈낸 작품을 들고 찾아온 신진작가를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처 등단시키지 못했다가 다른 곳에 작품을 뺏겨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제2회 상상문학상을 받고 역시 화려하게 등단한 권여선(32)씨의 성장소설 「푸르른 틈새」(살림 발행)는 한 출판사와 출간계약을 체결키로 하고도 그 과정이 다소 늦어지는 바람에 이 문학상에 응모, 당선된 경우이다. 지난해말 『근래 보기 드문 상상력과 지적 재미를 함께 갖춘 소설』이라는 격찬을 받으며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된 송대방(28)씨의 「헤르메스의 기둥」(문학동네 발행)도 몇몇 출판사에 원고가 보내진 작품으로 나중에 다른 출판사들이 몹시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제29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인 전경린(35)씨의 장편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는 당초 모 신문사 장편문학상에 공모했다가 낙선했지만 제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아 전씨에게 연이어 상복을 안겨주었다.
조금 멀리는 90년대초 최대의 「문화상품」으로 기록된 최영미(36)씨의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도 유사한 케이스. 최씨의 시집은 당초 다른 출판사의 시선의 하나로 기획되었다가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간,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아버지 신드롬」을 일으켰던 김정현(40)씨의 장편소설 「아버지」가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출판사였던 문이당에서 나와 출간 6개월만에 100만부가 팔려나가는 「사건」을 일으키자 다른 출판사들이 뒤늦게 『혹시 우리 출판사에도 「아버지」원고가 투고돼 오지 않았었나』 하고 디스켓과 원고뭉치를 뒤져보았다는 것은 웃지 못할 이야기.
문학평론가 황종연씨는 『이런 현상은 같은 작품을 두고도 출판사 편집자나 각 문학상 심사위원들이 보이는 문학관·취향의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거꾸로 문학도에게는 『좋은 작품은 반드시 빛을 본다』는 고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곳에서 푸대접받는다 하여 절망하지 말고 작품을 갈고 다듬어라는 격려인 것이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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