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원서구경 힘들어 대부분 열악한 업체 취직/“차라리 유흥업소로” 부작용도서울 K상고 3학년인 김모(18)군은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졸업은 하루 하루 다가 오는데 아직 일자리가 정해지지 않아서이다. 반 친구들도 모이기만 하면 취직 걱정이다. 담임 선생이나 선배들 얘기로는 지난해 이맘때면 반 이상 일자리가 정해졌다는데 지금은 응시원서를 손에 넣기도 쉽지 않다는 걱정스런 소문만 돌고 있다. 친지들을 통해 여러 군데 취직부탁을 해 놓았지만 언제 회답이 올 지 기약이 없다.
서울의 한 여자상업고등학교 취업지도 담당 교사는 속수무책이라고 털어 놓았다. 『금융계는 일찌감치 포기상태입니다. 괜찮다 싶은 중소기업도 대졸 지원자들이 몰리는 바람에 고등학교 쪽에는 많이 인색해졌어요. 그나마 졸업생들을 받을 만한 중소업체들은 불경기니, 연쇄 부도니 해서 있는 사람도 줄여야 할 판이라니 정말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대학이야 동문기업인들이라도 있고 홍보도 하지만 인력도 재원도 없는 고등학교는 그럴 수도 없고…』
사정이 좀 낫다고는 하지만 공업고등학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서울공고 실과부 신광철 교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맘때면 졸업생 수의 3배가 넘는 구인 의뢰가 들어와 골라 보낼 수 있었는데 올해는 취업 희망자의 70%를 조금 넘을 정도』라고 말했다.
고졸자 취업난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경기에 더 민감한 데다 전통적으로 고졸자 몫이었던 자리에 대졸자들이 몰리는 현상때문에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인기 직종이었던 9급 공무원직을 대졸자들이 차지해 버려 이제 고졸자들은 원서조차 내지 않게 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전에는 쉽게 갈 수 있었던 사무직, 일반 행정직 일자리를 차지하는 고졸자는 대폭 줄었다. 대신에 임시직이나 시간제 일자리를 갖게 돼 불완전 고용이 늘고 있다. 고졸자 취업난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취직 자체가 어렵고, 설사 취직을 해도 근무조건이 열악한 업체가 많아 학생들이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속칭 「삐끼」나 유흥업소 종업원 등 더 자유롭고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학생들이 늘고 있는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황동일 기자>황동일>
◎여성취업은 는다?/상반기 증가율 작년 2배/그러나 임시직·시간제만 늘뿐/정규직은 줄어 ‘속빈강정’
여성취업자가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여성 취업자는 857만2,000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823만3,000명에서 33만여명이 늘었다. 취업증가율도 지난해 2.2%에서 두배 가까이 늘어난 4.1%를 기록, 전체 취업자 중 여성 비율이 41.0%에 달했다.
여성의 취업 전망이 밝아진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취업 증가율이 높아진 것은 기업의 정규직 고용 기피로 임시직, 시간제 일자리가 늘어난 결과일 뿐이라는 분석이다. 올 신입사원 채용에서는 정규직 여성 취업은 예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4년제 대학 졸업자 남녀 비율은 약 6대 4(95년 2월 기준). 그러나 남자 졸업자중 32.2%가 50대 기업에 취직하지만 여자졸업생이 50대 기업에 일자리를 얻는 경우는 겨우 11.4%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취업률도 59.3%로 남성의 77.2%에 비해 훨씬 낮다. 경기침체에 따른 각 기업들의 신규채용 동결 및 감축 움직임은 여성 기피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각 기업의 채용시험 경향이 필기시험에서 면접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도 여성 취업준비생들에게 걱정거리다. 필기시험에서는 성차별이 있을 수 없지만 면접시험은 그런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이화여대 표경희(44) 취업지도실장은 『여성 인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의 기업 문화가 만연해 있다』고 걱정했다.
『기업은 취업난이 깊어지면 여성 채용부터 줄이고 봅니다. 반면에 우수한 여성 인력은 외국계 기업이 끌고 가지요. 그만큼 국가적 손실이 커지는 겁니다. 업무성취도에서 여성이 남성 못지 않거나 오히려 더 뛰어나다는 증거가 많이 나와 있지만 아예 기회를 가질 수 없으니 문제지요. 기업 관계자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황동일 기자>황동일>
◎취업관문 뛰어넘기/‘실력과 개성’ 둘다 필수/성적보다 직무능력 중시/비중 커진 면접 철저 대비를
취업대란에서 살아 남으려면 우선 대학성적이 좋아야 한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러나 대학성적이 좋지 않더라도 톡톡 튀는 개성과 창의력이 있으면 합격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삼성은 채용시험에서 과감히 학력을 철폐, 삼성직무능력평가(SSAT)를 통해 사원을 선발한다. 과거처럼 전공시험을 통해 인력을 선발하는 것보다 SSAT로 선발하는 것이 직무 능력면에서 타당성이 있음이 입증됐다는 것. 획일적인 교육과 암기위주의 대학 공부에 길들여진 사람보다는 독창적이고 재기발랄한 사람이 더욱 쓸모가 많다는 판단인 셈이다.
삼성그룹 인력관리위원회 한성렬 과장은 『전공과 관련이 없더라도 본인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본인 의사에 따라 기업 배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와 선경 등도 삼성직무능력평가제도와 비슷한 평가방식을 거쳐 신입사원을 선발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대학성적이 중상위권이 돼야만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대학 시절의 국내외 연수나 사회봉사 경험을 입증할 수 있으면 서류전형에서 다소 유리하다. 또 여러 가지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영어 회화 등 특정 분야에 재능을 갖고 있으면 우선적으로 합격자에 들어갈 수 있다.
현대는 1차 면접을 과장급 선배사원들이 하는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1차 면접평가는 2차 면접에서 중요한 평가 근거가 된다. 두차례의 면접을 통해 개인의 가치관이나 국가관 직무능력 등을 면밀히 관찰한 뒤 채용여부를 결정한다. 결국 실력과 개성, 이 둘을 모두 갖춘 사람만이 좁은 취업관문을 뚫을 수 있다.<조재우 기자>조재우>
◎노동시장 구조조정/‘인력 소수화’ 세계적 추세/불황여파 일시현상 아니라 정보화사회 따른 ‘슬림화’
취업 전선을 뒤덮은 한랭전선은 불황이 가장 큰 요인이다. 대기업 부도에 이은 중소기업의 연쇄 부도는 수많은 일자리를 증발시키고 있다.
올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7.1%보다 크게 낮은 5.9%에 그칠 전망이다. 경제성장률이 1% 하락하면 5만명의 일자리가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올해의 취업난은 경기침체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한 측면이 있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있다.
직업평론가 김농주(45)씨.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이동하면서 노동시장 구조가 바뀌고 있습니다. 기업이 앞을 다퉈 기존의 직급 중심 체제를 프로젝트별 팀제로 전환하고 있어요. 소수의 핵심 인력만 남기고 주변 인력은 정규직을 과감히 털어 버리는 「슬림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거지요.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 수 밖에요』
실제로 노동부 통계를 보더라도 올 1/4분기 상용 근로자는 0.9%가 감소한 반면 일용직과 임시직은 각각 12.7%, 5.6%나 늘었다. 주 36시간 미만의 불완전 취업도 16%나 증가했다. 노동시장 자체가 변해 고용의 질적 구조가 크게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인력 소수화 물결은 거스르기 힘든 세계적인 추세』라며 『개인적인 준비뿐만 아니라 사회적 준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취업 준비생은 물론이고 기업과 학교, 정부 모두 준비가 부족합니다. 모든 기업 업무가 전산화하고 있는데 학교에서는 여전히 주산·부기를 가르치고 있어요. 정보화 시대 특유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인력 체제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고용정책을 하루빨리 바꿔야 합니다』<황동일 기자>황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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