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끄는 알레고리적 글쓰기「16믿거나말거나박물지」라는 제목으로 묶여져 나온 백민석의 단편들은 그 「믿거나 말거나」라는 말이 선언하는 바 그대로, 그럴듯함이라는 전통적인 소설 규범을 가차없이 묵살한다. 인간 현실에 대한 어떤 일반적 동의에 부합되는 삶의 표상을 기대하고 그 단편들을 읽는다면 마치 조롱이라도 당한듯한 당혹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소설집에는 캘리포니아 나무개라는 정체불명의 동물을 비롯하여 괴상하기 짝이 없는 가상의 사물이나 정황들이 잇달아 나오며, 작중 상황은 왜곡되고 추상화된 나머지 종종 부조리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사실, 백민석의 소설의 목표는 서사의 실현이 아니라 비유적 세계의 구축이다. 특히 유희적이고 연극적인 발상에 기초한 알레고리는 그의 단편에서 지배적인 양식적 원리를 이룬다. 예컨대 「Green Green Grass of Home」의 화자는 「그린 맨 (Green Man)」이라는 별명의 「반동물 반식물 돌연변이 인간」에 관해 이야기한다. 믿지 못할 그의 신체변화를 기록하고 그를 「존재의 한계를 초월한」인간으로 간주하는 화자의 서술은 비유적인 것이다. 그것은 반신불수에 걸린 사람에게서 오히려 구차한 일상에서 벗어난 자유를 발견하는 장난기 많은 역설의 표현이다.
알레고리는 본래 그 축어적 기능과 비유적 기능 사이의 긴장을 내포하고 있지만 백민석의 알레고리는 특히 그러하다. 그의 알레고리는 그 긴장을 해소시켜주는 어떤 의미의 대립적 체계―가령 장정일의 알레고리가 전제로 하는 질서와 해방의 대립 같은 것―속에 머물지 않으며, 오히려 그 기능들 사이에서 계속 망설이는 듯하다. 이것은 그의 소설이 때때로 애매해지는 원인이면서 또한 그로테스크한 폭발력을 갖게 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음악인 협동조합」 연작 중 광란의 장면들은 이것을 전형적으로 예시한다.
백민석의 소설을 읽다 보면 웃기는 삽화나 장면들을 흔히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명랑한 희극과는 거리가 있다. 그 희극적인 것의 출처에는 삶의 하찮음에 대한 체념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백민석의 소설이 부단히 일깨우는 것은 삶을 의미있게 기획할 가망이 없는 젊은 세대의 비애이다. 그들은 가족의 해체로부터 자유를 얻었으나 고립에 빠졌고, 문화적으로 풍부한 세계에 살고 있으나 역사적 기억이 없다. 그런만큼 그들의 이야기가 분열된 세계의 담론인 알레고리로 표현되는 것은 문학의 필연인지도 모른다. 백민석의 알레고리적 글쓰기는 그래서 눈길을 끈다.<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문학평론가·동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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