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끽다거 “차한잔 마시고 가라”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잠자듯 선의 근본은 일상에 있는 것/조주의 다맥을 이은 보우 스님이 세우고 거한 곳/대웅전 왼켠 바위틈 찻물맛은 600년이 지나도록 변함없어북한산 대동문에서 북쪽, 동장대와 용암문 사이 서쪽 계곡 아래에 있는 태고사. 고려말 태고 보우(1301∼1381) 스님이 세운 절이다.
보우 스님은 당나라때의 대선장 조주(778∼897) 스님의 법맥을 이었다. 「끽다거」라는 공안으로 유명한 조주의 차맥도 함께 이었다.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이 말은 이제는 차에 갓입문한 사람들도 멋스러운 말로 즐겨 쓴다. 요즘은 「차한잔 마시러 오라」는 「끽다래」라는 말도 유행하고 있다.
조주는 단순한 마실거리인 차를 선의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한 잔의 차에 기대 불교의 진리를 찾는 차풍이 그에게서 일었다. 그에 이르러 비로소 「차와 선이 같아(다선일여) 둘이 아니고(선다불이), 선삼매가 곧 차삼매요, 차와 선이 한 맛(다선일여)」이게 됐다.
조주의 법맥은 직계 법제자 임제(?∼867)에 이어져 임제종으로 피어났다. 임제종단 출신 스님들이 하나같이 차의 달인이 된 것도 당연하다.
보우 스님이 18대 임제종사 석옥 청공(1272∼1352)을 찾아 중국 저장(절강)성 허저우(호주)의 하무산 천호암으로 건너 간 것은 충목왕 2년인 1346년. 2년간 석옥 청공과 함께 천호암 주변 2만여평의 차밭을 직접 가꾸면서 차와 선에 몰입한다. 조주의 차와 무자 화두를 잡고 씨름하던 어느날 문득 깨우침을 얻는다.
깨달음 뒤의 오도송은 장쾌하기까지 하다. 「조주의 옛 늙은 이가/ 앉아서 천성의 길을 끊었오. 취모리 칼을 얼굴에 들이 대어/ 온 몸이 빠져나갈 구멍도 없오. 사자가 뛰쳐 나오니/ 여우 토끼는 숨을 곳도 없네. 뇌관을 쳐 부순 뒤에/ 맑은 바람이 태고를 불어 주오」
이어 수많은 선승들을 무릎꿇린 게송. 「옛 시내의 찬 샘물을/ 한 입으로 마시고 뱉소. 흐름을 물리치고 저 물결위에/ 조주의 면목이 드러나오」
스님은 이렇게 당당히 석옥 청공으로부터 법맥을 이어 받아 임제종 19대 법손이 되어 귀국한다. 1,100년전 중국에 회오리를 일으켰던 조주의 차풍도 이때 따라 들어 왔다. 차인열전의 저자인 아주대학 국문학과 천병식 교수는 『이 오도송과 게송은 스님의 법기를 능히 가늠케 한다』고 말했다.
태고사를 찾았다. 구파발쪽 매표소를 거쳐 대서문과 등운각을 지났다. 중성문에서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쉬엄쉬엄 한시간 가량 오르면 중흥사터. 중흥사터 바로 위 가파른 산비탈에 태고사가 서 있다. 서쪽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우람한 자태의 의상봉과 용출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대웅전 왼켠 산신각 아래 바위틈에서 솟아 오르는 샘물은 스님이 찻물로 쓰던 샘. 시원하고 담백한 맛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스님은 이 절에서 이렇게 읊었다. 「거칠어도 음식이요 정갈해도 음식이니/ 당신들 사람따라 잡는대로 먹어보소. 운문의 호떡과 조주의 차맛인들/ 어떻다 우리 암자 맛없는 밥만하리」
운문의 호떡과 조주의 차가 태고사의 맛없는 밥에도 비할 수 없다는 말로 운문과 조주의 경지를 발 아래에 두었던 오연과 배포. 천둥같은 스님의 일갈이 북한산을 우렁우렁 흔드는 듯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조주와 보우 스님이 하나로 겹친다. 「차 한잔을 마시고 가라」는 말로 선의 근본이 「배고프면 밥먹고 잠오면 잠자는」일상에 있음을 깨우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차삼매 선삼매의 경지가 잡힐 듯 말 듯 하다.
대웅전 뒷켠 산비탈에는 보우국사사리탑(보물 749호)이 세월의 이끼를 입은채 서 있고 대웅전 남쪽의 비각속에는 보우국사탑비(보물 611호)가 남았다. 당대의 문장가 목은 이색(1328∼1396)이 썼다는 비문 말미에 스님의 문도들 이름이 길게 씌어져 있다. 「판문하 최영」이나 「판삼사사 이성계」 등의 귀에 익은 이름도 있다. 이성계의 이름은 유생들이 쪼아냈다는 얘기대로 가운데 글자가 없는 「이○계」로 돼 있다.
조선의 개국 공신인 삼봉 정도전(?∼1398)이 비문을 써 스님을 기린 「석종비」가 경기도 양평 사나사에 남아 당대의 호걸들과 두터운 교분을 알려 준다. 스님이 입적한 경기 가평 소설산 소설사는 지금은 터만 남았지만 스님이 그 물로 차를 달여 마시던 우물은 아직도 남아 마을 사람들에게 「보허샘」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승주 선암사 방장 덕암(82·전 태고종 종정) 스님이 보우 스님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 하무산 천호암을 찾았다. 천호암 주변 차밭에서 600년전 석옥 청공과 보우 스님의 전통차법 그대로 차를 만들고 있는 왕샤오추안(왕소견·66)씨를 만나 그가 만든 하무차를 맛보고 왔다.
덕암 스님은 『말로만 듣던 하무차와 조주의 차맥을 현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며 『보우 스님의 격조 높은 차맥을 우리 차인들이 소중하게 지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김대성 편집위원>김대성>
◎알기쉬운 차입문/낮은 온도에서 녹차를 우려내면 카페인 함유량이 커피보다 적어
늘 먹어도 물리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을 주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편식을 하거나 지우친 식단을 잡으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래서 음식을 골고루 먹으라거나 체질에 따라 가려 먹으라고 한다.
곰곰히 따져 보면 제철에 나는 음식을 먹고, 제철이 아닌 음식은 잘 갈무리해 먹으라는 지혜를 담은 말이다. 또 사람마다 다른 신체적 조건을 음식물과 잘 조화시키라는 말이기도 하다.
차가 바로 그런 마실거리이다. 봄철에 잎을 따 잘 갈무리해 겨울까지 마시는 차는 비타민 C가 풍부해 푸성귀가 부족한 유목민이나 고산족들에게는 필수불가결의 음료가 됐다.
차는 예로부터 「찬 음식」으로 분류돼 왔다. 중국 당나라때 차의 성인으로 추앙받은 육우는 「차의 성품이 차기 때문에」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린다고 했다. 사람을 이성적으로 만든다는 말이다.
옛부터 술과 차의 효능은 서로 다르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우리삶을 풍요롭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차의 성품이 차기 때문에 차를 먹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그래서 발효된 차를 마신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차를 마실 때 「성품이 뜨거운」꿀을 타기도 한다. 일본이나 중국의 차인들은 우리의 이런 모습에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차의 성품이 차다」거나 「차지 않다」는 말은 차 발효 과정의 카페인 중화를 염두에 둔 결과로 여겨진다. 차의 카페인은 발효되면서 줄게 마련인데 발효되지 않은 차의 카페인은 신체에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페인은 녹차가 커피보다 2∼3배 많지만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우려 내 성분분석을 하면 녹차의 카페인 함유량이 오히려 커피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홍차나 오룡차는 커피와 엇 비슷하다. 카페인이 뜨거운 온도에서 잘 우러나기 때문이다.
차는 찬 음식이어서 체질이 찬 사람들에게는 맞지 않는 것일까. 보다 설득력있는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박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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