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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왜 이리 흔들리나(동창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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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왜 이리 흔들리나(동창을 열고)

입력
1997.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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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년에 이르러 중소기업의 부도사태가 꼬리를 물고, 최근에는 기아를 비롯한 몇몇 대기업도 살아남기가 어려우리라는 비관적 전망이 압도적이고 보니 한국경제의 위기설이 나올만도 한 어려운 고비에 접어든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그러나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살림의 기초만 든든하면 패가망신의 위기에 직면해도 3년은 버틸 수가 있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 경제의 바탕이 잘 다져져 있어 웬만한 파도나 바람에는 흔들리기 어려운 것이었다면 나라의 살림이 이렇게 맥없이 주저앉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경제파탄의 모든 책임을 김영삼 대통령 한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 아닌가. 오늘같은 경제위기에서 김대통령은 왜 속수무책이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경제의 구조적 잘못을 당장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속수무책이 아니겠는가. 국제수지의 적자폭이 해마다 저렇게 늘어나고, 달러에 대한 환율도 고삐 풀린 말처럼 껑충껑충 뛰어 드디어 900원선을 넘어선 이 마당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한가지 사실은 국민총생산(GNP) 1만달러의 상당부분이 거품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 거품이란 언젠가는 자취를 감추게 마련이다.

환율이 달러당 600원이던 때에도, 미국을 여행해 본 사람은 누구나 우리돈 10만원이 미국돈 100달러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었다. 거품이 걷히고 모래 위에 지었던 집들이 무너지는 현실 앞에 우리가 망연실색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정신을 차리고 재출발의 각오만 단단히 하면 우리 경제의 미래에 희망이 결코 없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오늘 우리의 걱정은 야권의 결속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야당들의 통합이나 야권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가 설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여도 대한민국의 안녕질서에는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야당에서건 여당에서건 대통령이 탄생할 것만은 어김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 우려하는 바는 97년 9월부터 98년 2월까지의 반년동안 대통령과 청와대가 완전히 무기력한 상태에서 임기 만료의 그날까지 시간이나 끄는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일 뿐만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적 상징이다. 그의 얼굴을 국민된 우리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천하 만민이 모두 그의 얼굴에서 대한민국을 본다. 대통령은 여당의 15대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철두철미 중립을 지키겠다고 선언하였는데 나는 그 결단의 동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타의인지 자의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자의라면 당내 민주주의를 실천 궁행하려는 숭고한 의지였다고 풀이가 되고, 타의였다면 말 못할 어떤 사정이 당내에 있었나보다 하는 짐작 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 치열한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일단 승리의 면류관을 쓰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가 여당의 15대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다. 그 경선에서 2위가 됐건, 3위가 됐건 낙선의 고배를 마신 후보들은 경선과정에서 열두번이나 당내·당외에 서약한대로 경선결과에 승복해야 하고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최선을 다해야 할 터인데, 그 뒤에 왜 이 다리 저 다리 드는 부끄러운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가.

경선 결과에 불복하는 후보자들 중에서 으뜸은 경기도의 이인제 지사이다. 그런데 여당의 총재로서, 그리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반발하고 나서는 이인제 후보를 잠재우지 못한다면, 그를 달래서 이회창 후보 밑에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게 하지 못한다면 김영삼 대통령은 하야한 것만도 못한 부끄러운 처지에 놓이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이 경제적 위기에 대해 속수무책인 것은 다소 이해가 가지만, 인사관리에 마저 속수무책이라면 이것은 국가적 대란의 징조가 아닌가. 이인제 지사를 두번이나 청와대에 불러 점심을 대접한 뒤에도 이인제 지사가 제멋대로 제 길을 간다면 우리는 대통령 부재의 6개월을 살아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오는 12월18일 선거를 못하도록 인민군이 다시 남침이라도 감행하면 한국은 일대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국가적 위기가 되는 것이 아닐까.<김동길 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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