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는 구청위험물은 소방서10대 종업원·교통은 경찰이 ‘시어머니’/월 30만∼40만원 예사·상납 거부하면 주유소 입구에서 며칠씩 주차단속2월부터 서울 강남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 장사가 잘되냐는 질문에 『적절한 인수자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때려치우고 싶다』며 고개를 가로 젖는다. 김씨의 넌더리는 수시로 찾아 와 이 핑계 저 핑계로 돈을 요구하는 공무원들 때문이다.
『그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무조건 바보나 하인이 돼야 합니다. 대접을 하지않으면 당장 「미운털 값」을 물어야 해요. 여기저기 뜯기는 게 한달에 30만∼40만원 가량 됩니다』 한 업소만 보면 별게 아닌 지 몰라도 관내 업소를 모두 합하면 상당액이 공무원 뒷 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주유소는 유달리 관의 간섭이 많다. 영업관련 문제와 인·허가는 구청, 안전시설 및 위험물 관리업무는 소방서, 아르바이트 학생관리에서 교통문제는 경찰관이 각각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다. 더욱이 ▲유류탱크 등 위험시설물 ▲기름찌꺼기 세차장 폐수 등 폐기물 ▲인도를 통과해야 하는 차량 진입 ▲10대 청소년 고용 등 문제가 많아 관련 기관들로부터 요주의 대상이 된다.
『관련 기관이 많다 보니 자주 점검을 받게 되는데 항상 한두 가지는 지적받게 됩니다. 벌금운운하며 으름짱을 놓으면 돈을 주지 않을 수가 없어요』 김씨가 털어 놓은 돈뜯기의 이유와 수법은 다양했다. 주유소는 위험물 관리자가 있어야 영업을 할 수 있어 대부분 주유소 소장이나 사장이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 만약 관리자가 자리를 비웠는데 영업을 계속하다 적발되면 상당액의 벌금을 내야 한다.
『주유소와 20m정도 떨어진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던 중이었어요. 멀리서 보니까 소방공무원들이 주유소를 둘러보고 있어 서둘러 뛰어가 식당에 다녀왔다고 설명했지만 「시켜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핀잔만 들었습니다』 결국 20만원을 건네 주고서야 넘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 옆주유소 사람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인사를 하지 않아서 당한 일이라는 말을 듣고는 매달 10만원씩을 내고 있다.
그 다음은 경찰. 파출소 순찰차가 주유소 입구 옆에 차를 대놓고 교통단속을 하기 시작했다. 1, 2차선의 차량들이 차선을 바꿔 가며 경찰이 바로 앞에서 지키고 있는 주유소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매출이 줄어 갔지만 『하루 이틀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해 그냥 뒀다. 하지만 1주일을 같은 지점에서 단속을 계속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파출소를 찾아 갔다. 인사조로 10만원을 주고 매월 5만원의 회식비 보조를 약속했다. 단속 차량은 바로 사라졌다.
『더 지능적인 수법도 있어요. 얼마전 구청에서 정화조를 청소하라는 공문을 보낸 뒤 특정업체를 지정해 주더군요. 이 업체에서 30만원을 달라고 해서 청소를 시켰는데 끝난 후 영수증을 끊으면서 먹지 사이에 책받침을 끼고 금액을 적더군요. 뭘하나 봤더니 내게는 영수증에 30만원을 적고 구청제출용에는 20만원을 기재하는 겁니다. 나머지는 담당자와 나눠 갖는다고 하더군요. 특정업체를 지정한 이유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구청에서는 이밖에 세차장 오폐수, 기름찌꺼기 처리 건에 대해서도 특정업체를 지정하다시피 했다. 담당 공무원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돌아오게 될 지 몰라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지정 업체에 일을 맡겼다.
김씨는 주유소가 새로운 표적으로 떠 오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했다. 『유흥업소는 담당 공무원과 업자가 결탁하고 있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감시가 심하고 보는 눈도 많아 오히려 돈이 오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후죽순으로 늘어 난 주유소는 다릅니다. 워낙 규칙이 까다롭고 다양하니까 위반사항을 지적하기 쉬운 데다 뒷탈도 거의 없기 때문에 관의 봉이 된 겁니다』<염영남 기자>염영남>
◎뒷돈거래 요지경/유흥·위생업소 45%가 공무원에 뒷돈 제공/정기상납은 구청직원/일회성은 경찰이 많아 업소 무료이용도 상당수
우리나라 관의 뇌물수수 관행은 뿌리가 깊다. 사정과 감찰이 아무리 거세다 해도 어디에선가는 일선 공무원들이 관할 유흥업소 및 위생업소에서 뒷돈을 받아내고 있다. 이런 「뒷돈 거래」는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을까.
감사원은 지난 3월 서울과 부산의 식당을 포함한 단란주점, 노래방, 호프집 등 유흥업소와 여관 호텔 목욕탕 등의 위생업소 총 17개 분야 302개 업소에 대해 공무원 금품제공과 관련한 방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금품을 제공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45%가 『있다』고 응답했다. 일식집(72.7%) 유흥주점(62.9%)이 가장 높았고 여관(57.9%) 노래방(56.7%) 등의 순이었다. 다방(14.3%) 목욕탕(22.2%)이 가장 낮았다.
제공시기는 「단속이나 점검이 나왔을 때」(24.7%)와 「명절」(23%), 「담당 공무원 교체시」(15.2%) 순이며 제공장소는 「업소안에서」가 74%로 가장 많았고 「제3의 장소」 24%, 「직접 관공서에서」 2% 등이었다.
뒷돈을 뜯어 가는 관련 공무원은 단발성인 1회 제공의 경우 경찰공무원이 조사대상의 73.3%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구청 직원(19.8%) 소방공무원(3.5%) 순이었다. 반대로 정기적인 금품수수 공무원은 구청직원(46.8%)이 경찰(40.5%)보다 오히려 많았다.
금액은 정기상납이냐, 1회용이냐에 따라 다르고 대상 공무원별로도 천차만별이었지만 「1회용」은 유흥주점과 호텔이 20만원 이상, 단란주점 레스토랑 등이 10만∼15만원선이었다. 정기상납은 노래방 호프집 다방이 8만원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5만원선인 목욕탕 여관이 가장 적은 금액으로 공무원을 상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금품제공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보내면 안될 것 같아서」(32.6%) 「단속을 피하기 위해」(24.8%)가 많았고 「적발 뒤 무마용」(17.9%)과 「공무원이 노골적으로 요구해서」(16.1%) 「불필요한 트집이나 행정처리의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4.6%)라는 응답도 있었다. 위반을 눈감아 주는 대가로 건네지는 돈 외에도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돈을 받아 내는 예도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한편 관련 공무원들은 금품수수보다 위험부담이 적은 업소무료이용 등의 서비스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72.2%가 「무료제공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일식집(90.9%) 유흥주점(77.1%) 단란주점(76.9%) 등이 『우회적인 금품제공을 강요받고 있다』고 밝혔다.<염영남 기자>염영남>
◎심야영업단속은 투캅스의 ‘밥줄’/월정금·사례비 등 ‘보험료’ 내면 마음놓고 심야영업/버티면 표적단속
경찰의 심야영업 단속이 「뒷돈 뜯기」로 전락하고 있다. 단속권을 이용, 유흥업소로부터 월정금과 사례비를 받는 것이 보통이고 상납하지 않는 업소를 상대로 길들이기식 「표적 단속」을 하기도 한다.
서울 K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홍모(58)씨는 수십차례에 걸친 경찰의 표적단속으로 1억여원에 가까운 벌금을 내야할 처지다. 홍씨가 노래방을 연 것은 94년 1월말. 전업주는 『심야영업에 안 걸리려면 파출소와 경찰서 등에 월정금으로 100여만원은 상납해야 한다』고 귀띔했지만 홍씨에겐 너무 부담이 컸다. 『파출소와 경찰서에 40만원 정도만 갖다 줬어요. 주위에서는 관행을 깨면 안된다고 충고했지만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두 달뒤 경찰이 들이닥치더니 영업시간 위반으로 입건해 버리더군요. 주위에서 돈으로 해결하라고 권유해 액수를 타진해 보니 300만원은 달라는 거예요. 보통 30만∼50만원 정도면 해결이 되는데 훨씬 많았죠. 본떼를 보이겠다는 거였어요. 결국 1개월 영업정지를 당했습니다』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9월에 다시 단속에 걸렸다. 같이 심야영업을 한 인근 노래방 업소들은 모두 무사했는데 유독 홍씨의 업소만 집중단속을 당했다. 홍씨는 『가게를 내 놓았으니 그때까지만 영업을 하게 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지만 경찰은 10월말 다시 단속을 나와 아예 영업장 폐쇄조치를 내렸다. 이후에도 경찰은 하루가 멀다시피 단속을 나왔고 20여 차례의 추가 적발로 홍씨는 1억여원의 벌금과 함께 형사고발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일대에서 심야영업을 하지 않는 업소는 하나도 없어요. 다들 경찰 묵인하에 버젓이 영업을 해요. 상납을 잘 하지 않거나 경찰에 밉보인 업소만 당하는 것이지요』
경찰의 단속이 업주들로부터 뒷돈을 받는 수단으로 전락하면서 심야영업 금지는 최근 유명무실해 졌다. 대부분의 유흥업소들이 심야영업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버젓이 불을 켜 놓고 영업을 하는 업소도 늘어 났다. 신촌에서 단란주점을 하는 이모씨는 『별탈없이 심야영업을 하려면 경찰에 「보험료」를 정기적으로 상납해야 한다』며 『파출소에는 10만∼20만원씩 월정금을 내고 경찰서에도 수십만원씩 떡값을 상납하거나 식사와 술대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납을 하지 않거나 경찰과 친분이 없으면 반드시 단속을 당하게 되고 이때는 보통 20만∼50만원 정도는 내야 한다. 이씨는 『경찰이 단속을 빙자해 뒷돈 챙기기에 혈안이 돼 있다』며 『심야영업 단속이 애초의 취지는 퇴색한 채 경찰의 돈줄이 돼 있다』고 꼬집었다.<배성규 기자>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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