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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클레르크와 훈 할머니(정달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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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클레르크와 훈 할머니(정달영 칼럼)

입력
1997.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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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안다. 나의 은퇴 결행은 평소의 신념에 따른 것이다』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민당 당수인 프레데릭 빌렘 데 클레르크가 엊그제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던진 말이다. 국민당이라면 몇해 전까지 아파르트헤이트라고 하는 악명높은 인종분리정책을 주도해온 백인 집권당의 이름이다. 그러나 지금은 소수당으로 몰락중인 야당의 신세. 당수직은 물론 의원직과 모든 공직에서의 은퇴를 선언함으로써 데 클레르크는 물러나면서까지 한번 더 세상을 놀라게 한 정치인이 되었다.

89년에 남아공 대통령에 취임한 데 클레르크가 처음 세계에 충격파를 던진 것은 27년간 감옥에 갇혀있던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를 전격 석방한 것이다. 그는 『백인이 권력독점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남아공에 평화는 없다』는 폭탄선언과 함께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등 60여개에 이르는 반아파르트헤이트 단체들을 합법화했다. 그것은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백인 지배세력의 즉각적인 몰락을 뜻하는 것이었는데도 그는 그 길을 선택했다. 결과적으로 「흑인집권」의 기반을 닦아준 흑인 참정권 허용 등 그의 국민화합 노력은 93년 노벨평화상을 만델라와 함께 공동수상하는 것으로 보상되었다.

94년에는 전 인종에 투표권을 부여한 최초의 평등선거를 통해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직접 거들었다. 그 자신도 출마한 선거에서 만델라에게 패배하자, 그는 만델라가 구성하는 연립정부에 부통령으로 「강등」참여한다. 민족화합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가치이고 명분이긴 하나 전직 대통령이던 사람의 부통령취임은 놀랄만한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만델라와의 연정은 96년에 깨진다. 그는 그후 제1야당인 국민당을 다인종 대중정당으로 탈바꿈시키려고 노력해왔는데, 이제 느닷없이 은퇴를 선언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러나야 할 때가 되었다』는 그의 선언은 요즘 한국일보에 칼럼 집필을 재개한 김동길 교수가 12년 전 역시 한국일보에 써서 세상을 벌컥 뒤집어놓았던 칼럼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낚시론」으로 더 잘 알려진 그 칼럼의 제목이 「나의 때는 이미 끝났다」였기 때문이다. 그 글은 당시 신군부의 탄압아래 정치재개를 꾀하고 있던 「세 김씨」를 향해 『낚시나 하시라』며 직설적으로 은퇴를 권고한 내용이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 「세 김씨」의 위상을 따져보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들은 낚시질 따위는 안중에 없고, 그들의 「때」에 대해서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대통령을 역임한 「한 김씨」를 제외하면 지금이 전성기이기도 하다.

데 클레르크는 지난해 「진실과 화해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국민당집권 시절의 인종탄압에 대해 증언한 일이 있다. 그의 증언은 철저한 반성에 기초한 것이어서 감동적이다. 그는 『국민당은 과거에 저지른 많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실로 뉘우친다. 이 잘못들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정신이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진정한 반성을 통해 한 시대를 청산하는데 성공한 그의 정신적인 힘이야말로 그 어떤 정치적 제스처보다 위대하고 아름답다.

때마침 「훈할머니」가 잃어버린 그의 이름과 혈육과 고향을 찾은 날은 87년전 일본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겼던 국치일이었던 점이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왜 나라를 잃었으며, 무엇 때문에 수많은 「훈할머니」들이 피눈물을 흘려야 했으며 아직도 그 피눈물은 마를 줄을 모르는가.

매주 수요일마다 빠짐없이 일본대사관 앞길에서 벌어지는 일본군 위안부출신 할머니들의 항의집회에 관심을 보인 「우리」는 몇이나 되는가. 할머니들이 직접 나서서 만든 연극무대, 벌써 두 편이나 나온 영화에 대해 관심을 보인 「동포」는 과연 몇이나 되는가. 서울 동숭시네마텍에서 상영중인 두번째 영화 「낮은 목소리」에 대한 관심표명이 일본인들에게서 더 먼저 나오는 현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훈할머니」가 혈육을 찾던 같은 날 일본에서는 일본인 노학자가 32년에 걸친 「교과서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 학자는 비록 일본 안에서 「소수」에 속하지만, 반성을 할 줄 아는 「양심」이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반성하는지, 우리가 지나간 시대의 잘못을 어떻게 반성하고 청산했는지 곰곰이 생각할 것을 국치일에 있었던 일들이 우리에게 권하고 있다. 「훈할머니」는 이름과 혈육과 고국을 한꺼번에 찾았으나 그를 맞이한 우리는 부끄러움을 찾았다.<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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