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비·자원봉사 전적 의존/피해자 실태파악 등 엄두못내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이슈로 등장한 것은 불과 7∼8년전의 일이다. 일부 여성단체를 통해 간헐적으로 제기돼오던 이 문제는 90년 7월 한국정신대연구회(정대연)가 결성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연구대상에 올랐고 같은해 11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발족을 계기로 일본에 대한 사죄·배상요구 운동이 틀을 갖추게 됐다.
어두운 역사에 묻힌 채 잊혀져 왔던 위안부 문제가 국제무대에서까지 거론되게 된 것은 순전히 이들 두 단체의 외로운 「투쟁」 덕분이었다. 그러나 정부를 비롯한 사회의 무관심과 재정난 등으로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당장 시급한 것은 실증적 연구성과의 축적이다.
위안부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던 일본이 그나마 정부와 군의 관여를 일부 인정하게 된 것은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진상규명과 사죄, 배상은 외면하고 있어 고령의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뜨고 나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는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따라서 피해자의 증언 채록과 관련문서의 발굴을 통해 싸움의 근거를 확실히 다져두는 것이 필요하다.
정대연은 위안부로 신고된 국내 피해자 157명 가운데 40여명의 증언을 확보, 증언집 3권을 냈다. 하지만 자료발굴 부분은 일본의 민간단체들보다 뒤처져있다. 또 연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해외거주 피해자들과 일본군 출신 등 가해자,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을 받는 일 등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난. 현재 정대연은 30여명의 회원들이 내는 회비와 강연료, 원고료, 프로젝트 비용 등을 모아 운영되고 있다. 2년전까지는 재일동포 독지가의 도움으로 사무실을 운영했지만 그 동포가 사업에 실패한 뒤론 한 회원의 대학 연구실 한켠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부측에 수차례 지원을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다. 각 정당도 위안부 문제가 핫이슈로 등장할 땐 관심을 보이다가도 이내 식어버린다. 재정난에 쫓기다 못해 자존심을 굽히고 기업체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허탕만 쳤다. 법인이 아니라 기부하더라도 기업측이 세제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재정난의 당연한 결과겠지만 연구 인력도 태부족이다. 회원들은 대부분 「품은 뜻이 있어」 이 일에 뛰어든 초창기 멤버들이다. 자기 주머니를 털어가며 일을 해야할 형편이니 선뜻 나서는 이가 없는 것이다.
정대협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대연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일본에 대한 사죄·배상 운동을 펼치고 있는 정대협이 최근 가장 주력하는 것은 유엔 인권위원회 등 국제무대에서의 여론화 작업이다. 그러나 재정난 탓에 인권위 회의에 파견할 사람의 여비를 마련하는 것조차 벅찬 실정이다. 정대연의 한 관계자는 『모두들 자기 좋아서 하는 일이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때론 우리가 저지른 일이니 손을 뗄 수 없다는 일종의 「원죄의식」으로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뜻있는 이들의 성금도 모두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에만 몰려있다.<이희정 기자>이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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