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업소 30여곳중 9∼10곳서 용돈/뒷돈 받으면 단속의지도 약해지지만 그정도는 뇌물이라 생각안해경찰 생활 23년째인 Q씨는 아직 무궁화를 달지 못한 잎사귀 경찰이다. 시경에서 순경생활을 시작한 뒤 시내 경찰서의 교통과, 방범과 등을 거쳐 현재 파출소에 근무중이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대학생 아들과 고교생 딸의 학비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어 걱정이다.
『제 월급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 아마 금융계 신입사원 수준일 겁니다. 그 돈으로 애들 교육비를 부담할 수 있겠습니까. 달랑 월급만 갖고 살라고요? 먼저 그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지요』
Q씨의 월급은 150만원선이지만 한달 지출액은 대략 200만원이 넘는다. 자신의 용돈 30만원과 과외비와 학비를 포함해 둘째애가 70만원, 대학생인 큰 애가 학비와 용돈을 합쳐 대략 40만원을 「먹는다」. 아파트 관리비와 각종 세금, 차량유지비, 식료품 값과 기타 비용 등을 포함한 생활비는 70만원 정도를 차지한다. 도저히 월급만으로는 감당해 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누가 도와 주는 것도 아니다. 주변의 온정(?)없이는 살 수가 없다.
『아무래도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가 지원을 좀 해주지요. 그렇다고 큰 돈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주는 것도 아닙니다. 또 모든 업소가 주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안면이 있는 업주가 어쩌다가 5만∼10만원 정도 집어 주는 게 보통입니다. 그 정도 금액이 어디 뇌물이라거나 큰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이겠습니까』
Q씨 관내의 유흥업소는 호프집과 카페 등을 합해 30여개. 그중 9, 10개 업소가 돌아 가며 용돈을 주고 있고 금액도 천차만별이다. 또 일반 업소나 친분이 있는 주민들이 가끔 수고비를 보내 오던가 식사나 술대접을 하기도 한다.
『뒷돈을 받아 쓰면 아무래도 단속 의지가 약해지긴 합니다. 같이 사는 이웃인데 서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죠. 반면에 전혀 인사가 없는 업소는 왠지 야속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Q씨는 단속과 뒷돈이 반드시 직결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일부러 나서서 단속을 하지는 않을 뿐이지 구청과 합동단속이나 경찰서의 집중단속 기간 때에는 절대 봐주지 않는다는 것.
『사실 파출소가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업소 문닫게 하는 건 식은죽 먹기입니다. 술집은 말할 것도 없고 당구장, 다방, 음식점 등도 자세히 살펴 보면 위법 사항을 적발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험료 명목으로 경찰관에게 몇푼 집어주는 것이지만 금액이 작다고 덥석 받으면 큰일납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함부로 받겠어요? 그러다 고약한 친구를 만나면 되레 당하기나 하지요』
뒷돈 받기에도 원칙이 있다. 친분이 없거나 새로 영업을 시작한 업주, 옆가게와 사이가 안좋거나 경쟁관계에 있는 업주의 돈은 절대 사절이다. 말썽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단속을 미끼로 노골적으로 돈을 뜯든가 정기적으로 거액을 받는 등 고전적뇌물수수는 많이 줄었을 겁니다. 감찰과 사정이 워낙 심해서…』<염영남 기자>염영남>
◎교통단속 녹음 비리차단 특효/불필요한 대화 돈거래 사라져
담배갑만한 작은 휴대용 녹음기가 경찰관의 교통단속 활동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서울 관악경찰서(서장 이인원 총경)는 지난 3월 「교통단속 비리근절」과 「친절한 단속태도」를 위해 의경을 포함한 교통경찰 전원에게 녹음기를 지급했다. 근무시간동안 녹음기를 틀어 놓게 한 뒤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를 단속할 때 「녹음중」임을 알리도록 한 것. 허리춤에 녹음기를 휴대하고 소형 마이크를 이용해 위반한 운전자와의 대화를 모두 녹음하는 방법이다.
그 결과 여러가지 효과가 나타났다. 먼저 스티커 발부과정의 돈 거래가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근무시간에는 잠시라도 녹음기를 끄지 못하고 항상 켜 놓은 상태로 단속하다보니 경찰관은 위반사항 외에는 다른 말을 꺼낼 수가 없고 운전자도 범칙금액을 놓고 거래할 엄두조차 낼 수 없게 됐다. 이로인해 늘 돈거래 시비가 뒤따르는 음주단속이 투명해 진 것은 물론이고 음주운전자의 측정거부 행위 등도 증거로 남을 수 있게 됐다.
또 경찰관과 운전자 사이의 단속과 관련한 불필요한 대화가 없어졌다. 『내가 언제 위반했느냐, 한번만 봐 달라』는 생떼가 줄어 들었고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누구누구와 잘 아는 사이다』는 협박도 모습을 감췄다. 더구나 반말 투로 대하던 운전자의 언행이 공손해졌고 경찰관의 고압적인 단속자세도 친절하게 바뀌는 효과도 나타났다.
단속에 걸린 운전자 김모(33·공무원)씨는 『평소 공무원이라고 밝힌 뒤 사정하면 큰 위반이 아닐 경우 넘어가기도 했는데 이제는 녹음기부터 들이대는 통에 아무소리 못하고 면허증을 내줘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
정착되기까지 곡절도 많았다. 마이크부터 느닷없이 들이 대는 바람에 거부감을 갖는 운전자도 있었고 『테이프 없는 녹음기로 겁주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운전자에게는 일일이 꺼내 보여야 하는 번거러움도 있었다.
김승환 교통과장은 『직원이 사용한 녹음테이프는 근무가 끝나면 간부들이 회수해 근무시간과 테이프 녹음시간, 녹음된 대화내용 등을 일일히 분석하고 특이사항을 체크하고 있다』며 『녹음단속을 시작한 뒤로는 한달 평균 80여건 되던 교통단속 민원이 10여건으로 대폭 줄어들 정도로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청은 관악서의 녹음단속이 성과를 올리자 전국 교통경찰에 이를 확대할 계획을 검토중이다. 녹음단속은 경찰관 비리근절을 위한 사실상 최초의 성공작인 셈이다.<염영남 기자>염영남>
◎원인과 개선방향/공무원 부패·비리는 관·업·민 유착서 비롯/쓸데없는 접촉 줄이고 정보공개법 등 운용을
공무원 부패와 비리는 관·업·민의 유착으로부터 나온다. 유착의 매개는 각종의 과잉 규제권한이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관이 과잉개입하려 할 때 재량권의 자의적 행사로 인한 구조적 부패가 싹튼다. 구조화한 부패는 공직자 비리에 대한 불감증을 가져 오고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물에서 숨쉬고 있다는 그릇된 「공범의식」까지 낳는다.
정치인들이 한보대출 커넥션에 촉발돼 마련키로 한 「떡값방지법」을 외면하고 일부이기는 하지만 대민 접촉이 잦은 건축, 위생, 경찰, 소방 관련 공무원이 업자 등 이해관계자와 유착해 탈법적인 이권 거래를 행하는 조짐이 다시 일고 있다. 이는 감사원이 그린벨트 훼손과 토지형질 무단변경 등 불법에 대해 특별 감사에 들어간 것이나 올 6월말까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접수된 민원중 도시계획시설 해제요구 등 건축·도시계획 분야 민원과 지방자치단체 관련민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선정국을 맞아 각정당과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내세울 공약은 사회나 자연환경과의 균형관계보다는 해당지역 주민들의 민원성 주장에 동조하는 성격을 띨 것이어서 공직부패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소중한」 한 표에 직결될 뿐만 아니라 자치단체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당장 수익성 있는 사업이 행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심각한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는 대통령 임기말에 이제 사정 한파는 지나갔다는 기대로 골프채를 들고 필드에 나서는 공직자들과 그 상대인 업계·민간의 유착이 민생비리로 재구조화한다면 법치행정의 실종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회의 다른 부문에 비해 처우가 낮은 공직자들에 대한 제도적인 배려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당장 시급한 일은 이들 비리에 대해 상급 감독 부서나 감사원 및 검찰 등이 엄격한 법적용을 통해 알맹이 있는 사정을 전개하는 것이다.
부패는 돈을 매개로 부당하게 이권을 챙기려는 국민과 공직자간의 합작품이라는 인식을 새삼스럽게 가지고 이를 막기 위해 행정절차법과 정보공개법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인·허가 절차시 불필요한 대면접촉을 줄이고 우편이나 컴퓨터 등 통신에 의한 업무처리 영역을 넓히는 등 사회 전체적인 의사 결정구조의 민주화와 투명성이 보장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부패의 음습한 토양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다.<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강경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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