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장관 올브라이트는 자기가 유대인임을 장관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체코에 살고 있는 그의 사촌에게서 편지를 받은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할아버지가 나치에 학살된 사실을 모른 채 독실한 가톨릭가정의 체코계 이민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인종박해를 피해 온 유럽을 유랑하다가 미국에 정착했지만 미국사회 역시 유대인에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자녀를 정상적으로 키우자면 뿌리를 다 드러내 놓고는 살 수 없었다. 요즘 그는 조상의 나라 이스라엘의 생존이 걸린 평화협상에 나서고 있다. 그가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이민사회인 미국인의 가계는 어느 집이나 이렇게 사연이 많다. 족보에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70년대 후반 TV 연속극 「루트」가 인기를 모으면서 족보 만들기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었다. 최근 그 뿌리찾기가 되살아나 족보제작회사들이 성업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회학자들은 21세기를 앞두고 과거를 정리해 두고 싶은 마음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그럴 듯한 설명을 붙인다. 그런 사회심리가 마침 컴퓨터산업의 발달로 정보처리작업이 쉬워지면서 족보만들기를 기업수준으로까지 발전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얼마전 할아버지 나라를 찾아 서울에 왔다 간 미스 유니버스 브룩 리는 운이 좋은 셈이다. 한국인 하와이원주민 중국인 백인의 4색 혼혈인인 그는 『약혼자가 중국계인데 그의 성도 같은 이씨라서 아이에게 할아버지 성을 물려줄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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