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P는 국민총생산, 그렇다면 새발의 피는?』아직도 많은 시청자들이 기억하는 이 황당한 질문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몰래카메라에서 「연출」된 상황이었다. 당시 희생자(?)는 신인가수 이범학이었고 주모자는 개그맨 이경규였으며 배후자는 PD인 나였다. 「퀴즈 아카데미」를 만 3년간 연출한 이력 때문에 아이디어는 자연발생적으로 나왔다.
출연 학생과 응원 온 방청객에게는 개편을 맞아 「퀴즈 아카데미」의 진행자가 이경규로 바뀐다는 것을 고지한 상태였다. 처음에 미심쩍어하던 대학생들은 이경규가 엄숙한 표정으로 『이제는 단지 웃기는 사람만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도 배울만큼 배운 사람이다』라며 분위기를 심각하게 만들어 놓아서인지 「특이하긴 하지만 못 받아들일 이유도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그날의 질문자 이범학에게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녹화 직전까지 문제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사전누출의 위험을 막는다는 명분이었다.
말도 안되는 질문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지만 카메라에 잡힌 이범학, 출연학생, 그리고 방청객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마침내 이경규가 『이제까지 몰래카메라였습니다』라고 밝히는 순간 스튜디오는 경악과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속이고 속은 사람 모두는 한바탕 웃음바다로 침몰하고 말았다.
일부 시청자는 혹시 짜고 하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했는데 사실 짜고 하면 재미도 없거니와 결국은 시청자가 먼저 알아차릴 수 밖에 없다는 믿음을 제작진은 갖고 있었다. 요즘 백화점의 여자화장실에 설치해서 문제가 된 몰래카메라는 이경규의 그것과 무엇이 다른가 문득 생각해본다. 몰래카메라는 주체(설치하는 이)와 대상(포착되는 이)이 갖는 행복의 총량이 같아야 한다. 이범학은 나중이긴 하지만 몰래카메라에 포착된 것을 오히려 즐거워 했고, 그 즐거움에 동의했기 때문에 기꺼이 방송에 출연한 것이다. 설치하는 사람만이 즐거움을 얻는다면 감히 『몰래카메라를 사랑하시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원하지 않는 희생을 담보로 한 몰래카메라는 재미와 기쁨이 없다. 그러니 감동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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