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최고권력층 발포령 안내려도 책임 못면해”냉전시절 구동독 정부가 「국가수호」차원에서 행한 국경탈주자에 대한 발포를 통일독일이 심판하는 것은 타당한가. 독일 법원은 「그렇다」고 판결했다.
베를린 법원은 25일 과거 동서독 국경에서의 동독인 탈주자 사살 문제와 관련, 에곤 크렌츠(60) 전 구동독 집권당(사회주의통일당·SED) 서기장에게 6년6월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또 귄터 샤보브스키(68) 전 동베를린 공산당 서기와 귄터 클라이버(65) 전 SED경제담당 부총리에게 각각 3년형을 내렸다. 법원은 『구동독 국경통제 책임은 국가 최고기관이었던 SED 정치국에 있으며, 이들 3인은 모두 정치국 위원으로서 (사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유죄판결의 이유를 밝혔다. 직접 발포명령을 내려서가 아니라 명령계선상 최고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궁극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독일 헌법재판소도 『통일독일은 국경탈주자 사살명령을 내린 구동독 관리를 국제인권법 위반죄를 적용, 처벌할 수 있다』고 판시, 이번 판결의 법적근거를 제공한 바 있다.
유죄판결에 대해 크렌츠는 『법원은 독일판 매카시즘에 젖어 「승자의 정의」를 적용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그는 또 『이번 판결은 합법적 국가였던 구동독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이날 『이번 판결은 법적·도덕적 근거가 없으며 정치논리에 의한 것』이라며 크렌츠를 변호했다.
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될 때까지 41년간 동서독 장벽을 통해 탈주하던 동독인중 모두 916명이 사망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통독후 지금까지 동독 지도자와 국경수비대 등 총 160명이 기소돼 55명이 투옥됐고 35명이 집행유예를 받았다. 에리히 호네커 전 SED서기장도 발포 책임문제로 93년 기소됐으나 암투병 때문에 재판없이 망명을 허용받아 이듬해 칠레에서 숨졌다. 지금까지 단죄된 최고 인사는 구동독 마지막 국방장관이었던 하인츠 케슬러로 7년6월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이번 판결은 통독이후 불거져 나온 발포책임에 대한 정치적 재판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과거 분단 비극의 역사적 상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배연해 기자>배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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