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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 선집 다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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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그르니에 선집 다시 나왔다

입력
1997.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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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로 ‘섬’‘알베르 카뮈를 추억하며’ 등 3권 출간/카뮈의 스승으로 철학적 사유를 시적 영감에 담아낸 프랑스 산문의 정화/“명상에 잠기면서 다시 읽고 싶은 글들”『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알베르 카뮈는 스승 장 그르니에(1898∼1971)의 산문집 「섬」에 부친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1933년 첫 출간됐지만 국내에는 80년 처음 소개된 「섬」은 카뮈의 말처럼 우리 젊은 세대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 산문의 정화」였다. 이 「섬」을 비롯한 장 그르니에의 선집이 다시 출간됐다. 「섬」이후 드문드문 알려진 그의 저작들은 90년대 초 도서출판 청하에서 전집으로 나왔지만 절판됐고 민음사가 프랑스 갈리마르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해, 1차로 「섬」과 「알베르 카뮈를 추억하며」 「어느 개의 죽음」 3권을 낸 것이다. 「섬」을 초역했던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교수와 젊은 불문학자 이규현(성신여대 강사), 지현(서울대 대학원 졸)씨가 각각 새로이 번역한 판본이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그르니에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사유를 반짝이는 시적 영감에 담아냈다. 철학적 사유라 해서 거창한 주제가 아니라 개 한마리의 죽음에서 떠 올린 일상적 추억, 튀니지의 작은 해변도시에서 발견한 꽃 핀 테라스, 그리고 지중해 해안가의 무덤 같은 것들이 글의 소재다. 평범한 소재에서 발견한 삶의 비밀을 섬세하면서도 꿈꾸는듯한 어조로 음악처럼 들려준다. 무엇보다 그르니에의 글에는, 카뮈가 알제리 수도 알제의 고등학교에서 그를 스승으로 만난 뒤 글을 쓰겠다는 작심을 하게 된 데서도 알 수 있듯, 젊은이를 이끄는 「계시」와 같은 숨은 힘이 있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로 시작되는 「섬」의 첫 문장이그렇다.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비밀」을 고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는 구절은 카뮈가 자신을 취한 것처럼 만들어주던 일종의 「음악」같은 말이라며 되풀이 읽곤 했다.

김화영 교수는 『지식을 넓히거나 지혜를 얻거나 교훈을 찾는 따위의 목적들마저 잠재워지는 고요한 시간, 우리가 막연히 읽고 싶은 글, 천천히 되풀이하여, 그리고 문득 몽상에 잠기기도 하면서, 다시 읽고 싶은 글 몇 페이지란 어떤 것일까』라고 물으며 그르니에 산문의 성격을 알려준다. 그러면서도 김교수는 『전혀 글이 다른 언어로 씌어진 말만이 아니라 그 말들이 더욱 감동적으로 만드는 침묵을 어떻게 옮기면 좋단 말인가?』라고 되물으며 그르니에 특유의 언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카뮈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졌던 그르니에는 30여권의 철학서와 에세이집을 남겼지만 국내에는 사진 한장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었다. 파리에서 태어나 알제대학교 철학교수를 지냈고 68년 국가에서 수여하는 문학대상을 받았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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