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언니 여부 빨리 확인하고파” 설레/“자매중 인물 제일 좋았다 어머니말 생생”/“해방후 가세 기울어 진동서 이사” 회상도『하루빨리 만나 친언니 여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훈할머니의 막내여동생이라고 주장하는 이순이(61)씨는 『당시 어려서 언니얼굴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며 조심스럽에 입을 뗀뒤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생전의 어머니와 오빠로부터 딸들 중에서 일본에 끌려간 둘째 남이언니가 인물이 제일 좋았다고 전해들었다』고 털어놨다.
또 이씨의 오빠 태숙(1930년생·92년 사망)씨의 부인인 조선애(63)씨는 『시어머니와 남편이 생전에 「남이는 죽었는가 보다」 「우리 누나 안죽었으면 이렇게 소식이 없을까」하며 안타까워 했다』고 말했다. 조씨는 『시어머니와 큰시누이(덕이·사망)의 얼굴은 코 이마 큰귀 등이 매우 닮았는데 훈할머니의 모습도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조씨는 또 『시어머니가 남이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굿도 하고 점도 치러 다녔으며 남편은 술만 마시면 누나를 찾아 오누이의 정이 남달리 두터웠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시어머니가 마산 진동 성산마을에 살면서 방물장사를 할때 보따리에 구멍이 날 정도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는 조씨는 『시어머니가 집안살림에 별반 기여를 못한 큰딸 남편에게 「손가락이 하나 없어도 병신값을 한다더니 눈이 병신이라 애를 먹인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해 「형부가 애꾸눈」이었다는 훈할머니의 진술과 일치했다. 6·25때 이태숙씨에게 시집온 조씨는 시부모로부터 『진동에서 엿공장과 방물장사를 할때는 돈을 많이 벌었으나 해방이 되면서 가세가 크게 기울어 합천 가회로 이사왔다』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기억했다.<마산=이동렬 기자>마산=이동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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