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고 자극적인 신인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그것은 시의 수준의 문제이기 보다는 문화적인 문제이다. 80년대 초반과 80년대 후반 우리는 사회적 급변에 대응하는 낯선 시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은 우리 시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작업이었다. 실험적인 화법과 발랄한 감수성은 한 시대를 여는 파괴력을 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충격을 받기가 어렵다. 새로운 문화적 징후들이 시가 아닌 다른 장르를 통해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시인들은 탄생하고,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 역시 많다. 한 해에 갖가지 매체를 통해 등단하는 시인은 수십명이다. 그중에서 포기하지 않고 문학 시장과 문학제도 내에서 자신의 시를 인정받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올해 초의 신춘문예를 통해 화려하게 등단한 시인들은 지금 어느 정도의 활동을 보이고 있을까. 대부분의 시인이 뚜렷한 활동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배용제의 시는 눈길을 끈다. 그의 데뷔작 「나는 날마다 전송된다」는 신인다운 새로운 감수성과 함께 그가 적지않은 습작기를 거친 「준비된 시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시월간지 계간지에 발표된 그의 시들은 그를 가장 가능성있는 신인중의 하나라고 인정하게 만든다. 물론 그를 가장 가능성있는 신인 중의 하나라고 부르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외과의사」와 「폐쇄회로」에서 보이는 일탈적인 실존에 관한 묘사, 「옛 우물옆」과 「묘지에서 묻다」에서 보이는 소멸의 풍경에 관한 탐색 등은 신인으로서는 드문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에게는 아직, 가령 기형도를 비롯한 선배 시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그 흔적을 질료로 삼아 어떤 개성을 빚어낼 수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이 신인에게 우리가 어떤 가능성을 보탤 수 있다면, 그의 시가 어떤 방식으로든 「현대성」과 싸워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몸이 사는 현실에 대한 감각적 인식이 시를 새롭게 하고 우리 문학을 새롭게 할 것이다.<문학평론가·서울예전 교수>문학평론가·서울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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