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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익 전 애 대사가 본 「장승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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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익 전 애 대사가 본 「장승길」

입력
1997.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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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 수교 등 잇단 악재 위축된 생활”/김정일 신임 내비쳐… 아들 한때 서울행 타진장승길 대사는 이집트에서 소극적이고 위축된 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집트주재 북한대사로 부임하면서부터 신임장문제로 곤란을 겪기 시작, 한국·이집트 수교와 장남 잠적 등 개인으로서는 거듭된 「악재」에 시달렸다.

장대사와 같은 시기(94년 7월∼96년 3월)에 이집트대사를 지냈던 외무부 정태익 기획관리실장은 25일 『장대사는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국가인 이집트의 대사가 될 정도로 능력있는 외교관이었지만 부임하면서부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대사는 94년 7월12일 카이로에 부임, 신임장을 이집트정부에 제출했지만 7월8일 사망한 김일성이 서명한 것이어서 거부됐다. 이어 북한 대사관의 쿠웨이트산 전자제품 밀수사건으로 장대사는 또 한차례 곤욕을 치렀다. 장대사는 95년 4월14일 한국과 이집트의 국교수교가 이루어지고, 다음해 8월에는 아들 철민(19)군이 잠적해 더욱 궁지에 몰렸다.

정실장은 특히 95년 7월께 장남 철민군으로부터 『평양에서 왔는데 서울에 가면 공부할 수 있느냐』는 전화를 직접 받기도 했다. 정실장은 『당시 철민군을 데려올 경우 북한이 납치공작 등을 주장하며 공격할 가능성이 있어 철민군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카이로의 브리티시 카운슬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던 철민군은 서방세계를 동경, 장대사가 출입을 통제할 정도로 부자사이가 불편했다.

장대사는 악재때문인지 몰라도 온순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카이로 외교단 모임에서 소외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영어를 구사하지 못해 파티장에 통역을 데리고 다녔고, 말없이 구석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정실장은 회상했다.

장대사는 그러나 김정일의 신임을 강조하면서 북한 실세임을 내비치곤 했다. 정실장은 『장대사와 여러 차례 남북관계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때마다 김정일의 신임을 넌지시 비치곤 했다』고 말했다. 「꽃파는 처녀」의 주인공이자 김정일 처와 대학동기인 장대사의 부인 최해옥은 외교단 모임에 수수한 한복 차림으로 참석했는데 약간 살이 찌고 미인이라는 인상은 받지 못했다는게 정실장의 설명이다.<권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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