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딸·신상옥 부부 등 전례 많아장승길 이집트주재 북한대사 형제의 미국 망명요청설에 따라 그동안 미국에서 이루어진 정치적 망명과 처리사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탈냉전질서가 형성된 90년대 이후 미국으로의 정치적 망명은 크게 줄어드는 추세이다. 하지만 60∼80년대 냉전기에는 세계 각국의 정치인과 예술인, 고위외교관들이 독재와 공산체제를 피해 미국으로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스탈린 소련 공산당서기장의 딸 스베틀라나(67년)를 비롯해 달라이 라마, 솔제니친, 로스트로포비치, 베리시니코프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또 고위외교관으로도 67년 라드바니 주미 헝가리 대리대사의 망명을 포함해 소련출신으로 당시 유엔사무차장을 역임한 아르카디 세프첸코(78년), 로무알드 스파조프스키 주미 폴란드대사(81년) 등이 줄을 이었다. 특히 스파조프스키 대사는 망명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당시 자행된 자유노조 탄압과 관련해 「조국의 비극에 더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밝혀, 도피가 아닌 「행동하는 망명」의 표본을 보였다.
정치적 인물과 외교관들의 망명은 종종 해당국의 송환요구에 직면해 외교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정치적 동기가 확실할 경우, 이에 의연히 대처했다. 79년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차관은 『정치범의 강제송환요구에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는 입장을 천명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같은 전통은 90년대 들어 카스트로의 딸 알리나 페르난데스 레부엘타(93년)를 포함해 쿠바인의 이민성 대량망명 등을 계기로 다소 수정됐다. 95년부터 적용된 개정 망명법은 정치적 망명의 진위판정을 엄하게 하되, 동기가 확실할 경우는 조속히 처리한다는 원칙을 적용했다. 앞서 94년 1월 김종휘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의 망명을 불허한 예는 망명의 정당성에 대한 미국의 변화한 시각을 반영한 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도 미국은 중국 반체제인사 리우장(유강·96년)의 경우처럼 「송환시 명백한 신체·자유의 위협이 따를 경우」는 해당국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망명을 허용했다.
북한이 관련된 냉전기 최대의 미국망명 드라마는 86년 이루어진 영화감독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케이스. 당시 오스트리아 주재 미국대사관을 통한 신씨 부부의 망명에 관해 미 국무부는 신병처리를 사실상 완료한 뒤, 망명요청 5일만에 관련 사실만을 확인했다.
이같은 예를 감안할 때 미국측이 장대사의 망명요청 사실을 확인한다면 이미 망명허용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장인철 기자>장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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