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욕망 버리고 정보화물결 헤쳐나갈 청정심과 자애심이 문화혁명의 원동력정보혁명이라 하여 우리 문화의 표리가 크게 바뀌어 가고 있다. 이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보다 빠르고 편리한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화성의 고요한 언덕이 우리 앞에 경이롭게 출현하기도 한다.
기나긴 인류사에 있어서 인류는 외계로 향한 관심과 인간 내면의 비밀한 관측을 통해 과학·철학사의 지평을 넓혀왔다. 그러나 그 탐구의 대상에 따라 구분되는 과학과 물리, 철학과 심리 등의 장르를 허물고 진지한 관찰자들이 만나는 공통의 경계가 있으니 바로 인간의 무분별한 오만에 대한 반성과 그에 따르는 생명에의 외경, 그리고 자애심의 발견이다.
언젠가 TV를 통해 아프리카 침팬지의 생태 연구에 일생을 바친 한 진지한 탐구자의 유엔에서의 연설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우리 수행자들과 닮아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존엄한 인간선언을 보는듯 가슴이 뿌듯했다. 겸허함과 자애심은 바로 외계를 향해 나타나는 인간존엄의 한 양상이며 그 존엄의 현시는 바로 우주 생명 공통의 청정심에서 발현되는 것이다.
외계의 정보를 향해 부단히 움직이든, 내면의 심리를 좇아 끊임없이 번뇌하든 우리는 안팎의 무수한 정보의 소용돌이 그 한가운데서 쉬임없이 서성인다.
세간을 표현하는 인도에서의 용어는 사바세계이다. 모래알보다 많은 정보의 물결, 번뇌의 파도가 연상되는 술어다. 그 파도를 헤쳐 나감에 있어 정보를 수용하는 양상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우리 주관과 친밀하게 받아들여지는 경계는 즐거움(낙수)이요, 자신의 내면을 거슬러 충돌하며 들어오는 정보는 괴로움(고수)이요, 그런 느낌도 없이 우리 주변을 넘나드는 정보를 불고불락수라 한다. 행복감과 고통은 그렇게 인간의 내면과 정보가 만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응일 뿐이다. 이와 같이 정보의 물결은 개개의 내면과 부딪치며 가치 중립 그 너머에서 서성이지만 우리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 그리고 집단의 규범, 그 경계에서 또다른 주인공인 나를 찾게 된다. 개인의 극대화한 자유가 집단규범을 넘어 충돌하게 되면 결국 안정과 자유의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정보의 혁명 앞에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정신의 개인이 모여 보다 자유로운 공동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묻게 된다. 그 자유와 규범을 모색하는데 지표가 되고 있는 동양의 윤리― 그 바탕에는 분별의 지식과 이해의 속성을 초월해야 만날 수 있는 공통의 지혜가 있다. 바로 무분별의 지혜, 청정심이다. 무심으로, 대도로, 또 무문으로 표징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통과 쾌락의 분별적 수용을 넘어서서 번뇌와 욕망을 그치고 대상을 욕심없이 바라보는 관조의 주체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만물에 대한 넓고 깊은 청정심과 자애심을 말한다.
자기 정화를 통한 투철한 청정심과 대상을 향한 사심없는 자애심을 실은 물결만이 정보혁명의 불안과 충돌을 평정하고 올바르게 고무시켜 참다운 문화혁명의 에너지로 환원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 청정심의 문화전통을 원형으로 간직한 해뜨는 나라, 동양중의 동방이다.
우리 산하와 더불어 그 민심의 수면을 가만히 두드리면 개인의 존엄과 공동의 자애심이 부드럽게 부딪쳐 떠오르는 홍익과 두레의 잔잔한 문화흐름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는 우리 문화의 깊고 깊은 정체성이다. 그 표층에 떠오른 정보가 많다 하여 오늘날을 정보혁명이라 하지만 그 옛날 성인은 삼천대천세계 우주를 걸림없이 보고 물속의 미생물을 남김없이 보되 그 어떤 기술도, 그 어떤 매체도 동원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의 마음을 덮고 있는 번뇌의 그물을 거두고 욕망으로 닫힌 안목을 열어 청정심을 회복함으로써 거침없는 외계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바로 그 흐름속에 뚜렷이 서는 도구없는 무형의 기술을 가졌던 것이다. 그 비결은 하나도 가진 것이 없어 모든 것을 회복한 청정심의 혁명일 뿐이다.
마음을 비우고 세월 지난 침묵의 종묘에 서거나, 석굴암 그 앞에서 가만히 귀 기울이면 허공을 꽉 채우고도 남는 정보가 넘쳐난다.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 1,000년전의 기술이, 거기다 해탈과 자유의 이름으로 불리는 수많은 지혜코드가 무궁무진하다. 청정심(0)과 자애심(1)의 디지털화, 그 문화혁명을 위해 앞다퉈 경쟁하는 앞서가는 안목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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