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각 악순환 공멸 재촉 “비명의 경제”/천문학적 부실에 기업·종금 외면/떼거리 여신회수 은행·기업 위협/일부 거대재벌 빼곤 모두 살얼음선진국으로 항해하던 한국경제가 침몰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를 끌고 갈 기업과 금융, 두 엔진이 수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진 상태다.
어느 하나만 생존할 수 없는 공생관계지만 기업과 금융은 반년 넘게 서로를 목조이고 있다. 기업은 문어발·빚더미 경영으로 금융기관에 천문학적 손실을 입히고 금융기관 역시 근시안적 자금운용으로 수많은 기업을 생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금융권내선 은행과 종금사가 「제로섬」의 혈투를 진행중이다. 현 상황은 금융만의 곤경도, 기업만의 애로도 아닌, 하나의 끈에 의해 운명적으로 이어진 은행-종금-기업이 동반사망으로 치닫는 국민경제의 총체적 붕괴위기인 셈이다.
◆은행과 기업
한보로 시작된 기업도산행진은 7개월여만에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등 재계서열 50위권이내의 6개 재벌을 차례로 무너뜨렸고 해태까지 흔들었다. 재벌이 쓰러진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뒤처리가 기약없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하청업체들은 어음을 갖고도 현금화를 하지 못해 줄도산하고 있다.
은행권이 이들에 물린 돈은 국가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2조원대. 연간 이자손실도 2조원에 달한다. 부실이 극에 달한 국내은행들은 해외에서 「기피대상 1호」로 낙인찍혀 달러를 들여오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도 이젠 더이상 기업에 돈을 빌려주려하지 않는다. 쓰러뜨리기엔 너무 큰(Too Big To Fail) 기업엔 어쩔 수 없이 대출을 해주지만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이미 은행으로부터 외면당한 상태다.
기아만해도 부도유예협약 적용 한달이 넘도록 1만7천여개 협력업체들이 진성어음조차 할인받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숨가쁘게 연명하고 있다. 추석고비를 넘기는 업체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종금과 기업
종금사들의 「마녀사냥식」 여신회수는 대기업도산의 직접적 원인이다. 재무구조 불량기업을 상대로 몇차례 어음을 돌리다가 허약하다고 판단되면 하루에 무려 1천억원이 넘는 어음을 집중교환한다. 굴지의 기아도 이렇게 쓰러졌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이런 식이라면 삼성 현대로 못버틴다』고까지 말한다.
단기자금에 목마른 기업에 단비를 뿌려주던 종금사들이 하루아침에 「기업킬러」가 된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종금사들은 무담보거래 특성상 돈을 떼일 위험이 높아 아예 기업이 쓰러지기전에 한푼이라도 건져야한다는 태도다. 여신회수는 종금사가 살기위한 「자구책」의 성격도 짙다. 하지만 소문만 나도 벌떼처럼 달려드는 종금사들의 어음교환은 멀쩡한 기업까지 죽이고 결국 그 화는 종금사 자신에게 부실로 되돌아온다.
◆종금과 은행
부실여신의 같은 멍에를 쓰고 있는 은행과 종금사는 「동병상련」은 커녕 「동상이몽」만 하고 있다.
객관적 상황은 공신력이 떨어지는 종금사가 더 열악하다. 종금사 예금은 이달들어서만 1조3천억원이나 빠져나갔고 신용도추락에 따른 해외차입중단으로 후발종금사들은 원화든 달러화든 하루짜리 콜자금에 연명하고 있다. 「금융기관부도」란 초유의 사태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들은 도산위기의 종금사에 콜자금조차 빌려주지 않고 있다. 종금사가 보유한 기업어음(CP) 최대수요자였던 은행신탁계정은 이달들어서만 1조1백억원이나 매입을 줄였다. 여신 수신 국제금융 등 3대 영업기반이 모두 무너진 종금사들은 결국 마지막 수단인 여신회수로 돌입, 어음을 무더기로 지급제시함으로써 은행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은행-종금-기업이 이처럼 물고 물리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경제는 공멸이 불가피하다. 줄줄이 도산하는 기업, 부실여신에 시달리는 은행, 존립위기를 맞고 있는 종금중 어느 하나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침몰이 시작됐는지도 모른다』는 비관론까지 대두되는 한국 경제는 더이상 지켜볼 한치의 시간도 없는 상황이다.<이성철 기자>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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