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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자금흐름부터 뚫어라”/금융위기­전문가 3인 긴급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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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자금흐름부터 뚫어라”/금융위기­전문가 3인 긴급좌담

입력
1997.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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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차관­금융·실물 구조조정 동시 이뤄져야/김 교수­‘위기관리 의문’ 국민불신해소 절실/박 원장­기아사태 정부개입 원만히 해결을한보철강부도와 진로 대농 기아 등 대기업들에 대한 잇따른 부도유예협약적용으로 금융권의 경영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금융기관의 경영난은 다시 기업들에 대한 자금회수로 이어져 우리 경제 전반을 흔들어놓고 있다. 한국일보사는 22일 강만수 재정경제원차관 박영철 한국금융연구원장 김광두 서강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김교수의 사회로 긴급 좌담회를 개최, 금융위기의 원인과 현상 및 대책을 모색해 봤다.<편집자 주>

김교수: 우리 금융부문이 전반적으로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 있습니다. 해외차입 곤란으로 외화사정도 불안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기업의 현금흐름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등 금융계의 어려움이 우리경제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습니다.

박원장: 우리의 금융 및 외환상황이 멕시코나 태국같은 최악의 위기사태에 빠져들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우선 대외적으로 동남아 외환위기가 진정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또 올해 6%대의 견실한 경제성장이 예상되고 있는 등 국내거시지표가 괜찮습니다.

김교수: 위기라고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어려운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시중은행 일부와 많은 종금사들이 거액의 부실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위기로 발전할 소지는 충분합니다. 이같은 상황에 처한 원인으로 우선 우리 기업들의 투자행태를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 채산성 자금력을 감안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투자를 감행해 왔습니다. 그것도 자기자본이 아니고 남의 자본으로 투자를 하다보니 금융기관의 한계를 벗어나는 부실채권이 발생한 것입니다.

강차관: 종금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단자에서 전환한 종금사들의 무리한 외화자산 증식에서 생겨났습니다. 해외차입여건이 어려워져 자력으로 외화차입이 힘들어지고 은행을 통한 차입도 곤란해지자 약간의 경색에도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종금사들은 큰 충격을 받고 이는 다시 기업으로 옮겨져 가고 있습니다. 현재 금융기관 전반적으로 시장 내지 신용의 차별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례없는 변화과정에서 금융권에 커다란 위기감이 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원장: 장기적인 경기침체기간에는 기업들이 생산과 투자를 조정했어야 하는데 우리 기업들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3대 경직성, 즉 노동 경영 정책결정·운용면에서의 경직성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 재고가 늘어남에 따라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돈을 무리하게 빌려야 했고 이것이 한계에 달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직접 돈을 빌리다보니 간접부문이 상대적으로 위축돼 거대기업들의 문제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차관: 우리기업은 60년대이후 지금까지 선진국이 경험한 구조조정을 한번도 겪지 못했습니다. 과거 30대 그룹은 얼마든지 돈을 얻을 수 있었고 금융기관도 이들에게 돈을 떼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실물과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박원장: 40년에 걸친 재벌―금융기관―정부의 긴밀한 공조체제가 자율화 개방화와 함께 무너지고 있습니다.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강화는 오랜시간이 걸립니다. 다른 나라들은 3∼4년이 걸려 구조조정이 이뤄지는데 우리는 시작한지 2년밖에 안됐습니다. 구조조정과정에서는 정부의 분명한 정책방향이 필수적입니다.

강차관: 정부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정책을 수행한다는 입장을 누차 밝혀 왔습니다. 금융기관 부실채권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성업공사의 부실채권 정리기금을 적극 활용할 계획입니다. 외화차입은 정부출자은행인 산업은행이 외화를 차입, 이를 전대하는 방식을 이용할 것입니다. 산은은 다음달 15억달러를 차입할 예정입니다.

또 기업의 수출선수금 및 착수금 영수한도를 늘림으로써 금융권의 외화사정에 여유가 생기도록 하겠습니다. 부분적인 문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환매채(RP)나 외화자금 직접지원을 통해 해결하고 있습니다.

김교수: 은행에 지원을 해도 이것이 종금으로 전달이 안되는 단절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종금사의 부실채권이 커지다보니 은행이 종금을 못믿게 돼 콜자금을 주거나 기업어음(CP)을 사주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자금흐름 단절현상을 해결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강차관: 정부가 당분간 종금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걸 확신시켜주는 조치를 취하면 은행들의 종금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은에서 은행으로 나간 돈이 종금까지 흘러갈 것입니다.

박원장: 단기적인 금융지원뿐 아니라 장기적인 금융체계 개편이 필요합니다. CP는 시장에서 유통도 되지 않는 단순한 대출수단이 돼 버렸습니다. 결국 은행을 대신해 종금이 CP를 통해 대출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 아래서는 문제가 생기면 은행과 종금이 동시에 물려들어가게 됩니다.

강차관: 어음 한장이 부도나면 기업 전체가 죽게 되는 체계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미국처럼 부도의 규모나 상황, 고의성여부에 따라 채권금융기관들이 「부도」 「채무불이행」 「파산」 등 처리방향을 차별화할 수 있도록 어음체제가 개편돼야 합니다. 하지만 한순간에 바꾸기는 힘들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형태로 채권금융단이 모여서 기업회생여부에 대해 협의하는 부도유예협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김교수: 부도유예협약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협약때문에 오히려 자금조달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측면이 있습니다.

강차관: 개정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는 않지만 이른바 「제3금융권」을 협약 가입대상으로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개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은행의 신탁계정이나 보험은 협약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박원장: 금융의 문제는 실물부문에서 비롯됐는데 기아사태해결을 채권유예기간종료 때까지 두고 보겠다는 정부의 자세는 문제입니다. 채권단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큰 산업은행을 소유한 정부가 나몰라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채권단은 경영정상화보다는 채권확보에 신경을 더 쓸 수 밖에 없고 자체 힘으로는 기아사태를 풀 수가 없습니다. 기아자동차를 한보철강처럼 공개입찰―유찰―정부개입의 수순을 적용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정부가 개입해서 원만히 해결해야 합니다.

강차관: 진로 대농 기아그룹의 문제는 모두 부도유예협약에 따라 동일한 원칙으로 처리해야 합니다. 기아그룹에 대해 현재 채권행사가 유예된 돈이 3조원에 이릅니다.

이는 이미 소극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협력업체도 은행의 어음할인이 안돼 부도가 난 회사는 한군데밖에 없습니다. 한보철강의 경우는 부도가 난뒤 공개입찰을 3차례나 했어도 원매자가 없었기 때문에 정부가 수의계약 등 여러가지 방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김교수: 정부에서 현재의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속으로 골병든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 비등점에 도달해 일제히 터지기 전에 조치가 필요합니다.

강차관: 낙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표현하는게 적절합니다. 「대란」 「위기」라는 말이 자꾸 떠돌아 상승효과를 일으키는 악순환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대공황도 증시의 조그만 루머가 증폭돼 일어난 것입니다.

김교수: 그런 점도 없지 않지만 그만큼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 대해 정부가 반성해야 합니다. 정부가 위기상황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기 때문에 개인이고 금융기관이고 나부터 먼저 살아야 겠다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박원장: 국민들뿐 아니라 외국투자자들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이들이 국내상황을 오해, 돌발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외환위기가 닥치지 않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국제금융시장의 영향력있는 세력들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교수: 결국 우리 경제문제해결의 초점은 투명성이라고 봅니다. 기업이나 정부나 모두 투명성유지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문제를 확대시키지 않고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정리=김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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