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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목표제’가 비현실적?/복거일 소설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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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목표제’가 비현실적?/복거일 소설가(아침을 열며)

입력
1997.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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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9일 국무회의는 한국은행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길고 험했던 논의 끝에 나온 개선안인데 내용이 좋지 않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핵심적 사안인 「물가목표제」가 슬그머니 사라졌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관한 논의의 본질은 독립과 책임의 조화고 물가목표제는 그런 조화를 이루는 수단이기 때문이다.한국은행이 정부로부터 상당히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통계적 사실이다. 그런 사정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먼저 정치적으로 물가 상승은 경기후퇴나 실업보다 훨씬 작은 짐이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물가 안정보다는 경기 부양에 무게를 둔다. 요즘처럼 선거를 앞둔 때엔 특히 그러하니, 덜 걷힌 세금을 생각해서 줄이기로 했던 내년 정부 예산이 여당의 압력으로 늘어나리라는 얘기는 이 점을 또렷이 보여준다.

물가 상승을 막을 조치들은 물가가 실제로 오르기 훨씬 전에 나와야 제구실을 할 수 있는데 정치가들이나 기업가들이 그런 조치들의 필요성을 제때에 깨닫기 어렵다는 사정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언제나 물가 억제조치에 저항한다. 이래저래 통화정책에 대한 정치가들의 영향력이 큰 나라들에선 물가를 안정시키기 어렵다.

반면에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통화정책은 경제정책의 한 부분이고, 경제 정책에 관해선 선거를 통해서 시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가들이 궁극적 책임을 진다. 따라서 선거를 거치지 않은 중앙은행의 경영진이 선거를 거쳐 정권을 잡은 정치가들로부터 거의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물가목표제는 바로 이런 상충을 푸는 방안으로 나온 것이다. 물가목표제는 허용될 수 있는 물가상승률을 미리 정해놓고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중앙은행의 총재가 정부에 대해 책임을 지는 제도이다. 중앙은행이 정부에 대해 질 책임의 성격과 범위를 또렷이 해놓고 그 목표를 이루는데 필요한 권한을 정부가 중앙은행에 깔끔하게 위양한다는 점에서 그 제도는 중앙은행의 독립을 보장하면서 그것의 비논리성을 제거한다.

안타깝게도 물가목표제는 논의과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대신 「한국중앙은행은 매년 정부와 협의하여 물가 안정 목표를 포함한 통화신용정책 운용 계획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조항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것은 물가목표제가 아닐 뿐더러 실질적 효과도 없는 수사이다. 개정안을 마련한 사람들은 물가목표제가 비현실적이어서 없앴다고 신문들은 보도했다. 근년에 과감한 자유화로 경제를 회생시킨 뉴질랜드에서 이미 여러해 전부터 시행했고 다른 선진국들이 잇달아 시행하는 그 제도를 비현실적이라고 한다면, 그것도 독립과 책임의 상충을 조화시킨 대안을 내놓지 않고서 그렇게 한다면 무엇이 현실적일 수 있겠는가.

하긴 물가목표제는 한가지 뜻에서 비현실적이다. 미국의 경우 중앙은행에 상당하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는 정부로부터 거의 독립적인데 경제상태가 좋으면 그 공의 가장 큰 몫은 대통령이 아니라 그 기구의 의장에게 돌아간다. 대통령이나 경제 관료들이 한국은행의 실질적 독립을 불러올 물가목표제에 적대적인 것이 이상하지 않다. 그 연합세력을 이길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물가목표제는 지금 이곳에서 비현실적이다. 대처나 레이건처럼 자유주의에 대한 믿음이 굳은 지도자가 나와야 물가목표제와 같은 혁신적 자유화 조치는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핵심적 사항은 빠지고 번지르르한 수사적 조항들로 채워진 채로 개정안은 국회의 의결을 얻을 것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돌이키기 어려운 듯하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엔 까닭없는 잘못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고치기도 어렵지 않다. 바로 한국은행의 이름을 「한국중앙은행」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것은 정말로 느닷없는 일이다. 「중앙」이란 말이 들어가면 권위가 더해지는가. 이름을 바꿀 까닭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개정안의 공허한 내용을 가리기 위한 술수라는 생각까지 든다. 지금도 「한은」이라고 줄여쓰는 판에, 네 음절을 여섯 음절로 늘려 이로울 경우가 과연 있겠는가? 당장 들어갈 엄청난 비용은 어떻게 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이름은 가볍게 바꾸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한다하는 기업이 회사의 영어 표기를 가볍게 여겼다가 국제 입찰에서 자격을 잃은 희비극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해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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