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대책 실효·당압력에 밀려/금융시장 안정 단기처방 주력/「여론달래기 제스처」 그칠수도기아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정부가 「적극 개입」으로 입장을 급선회하고 있다.
당초 26일 이후 발표키로 했던 「금융시장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25일 긴급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해 즉각 시행키로 한 게 단적인 예다.
이같은 입장전환은 일차적으로는 대통령선거를 의식한 신한국당의 적극적인 주문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재정경제원 고위당국자는 이와관련, 『오늘(23일) 당정협의에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경제의 심각성에 대해 정부진단이 매우 안이하다. 경제난국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지원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랐다는 전언이다.
다음으로는 기존 대책의 실효성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동안 종합금융사들의 자금난과 금융기관들의 대외신인도 추락 등 금융시장의 불안조짐에 대해 『일시적이며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며 적극적인 외화방출로 대처해 왔다.
하지만 부실기업 정리가 지지부진, 금융기관들의 부실채권이 누적되면서 자금난이 심화한데다 돈만 푸는 방식으로는 추락한 대외신인도를 끌어올리는데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불안심리만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이 와중에 해태그룹마저 종금사들의 마녀사냥식 자금회수로 휘청거리자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에 따라 관계기관 대책회의와 당정협의를 거쳐 25일 확정되는 대책에는 중장기보다는 단기적인 처방이 주류가 될 전망이다. 강만수 재경원 차관은 『제일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특별융자여부를 포함한 금융시장 안정대책, 종금사 지원방안, 외화조달방안, 기아·한보 대책 등이 망라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우선 제일은행에 한은의 특융을 지원해 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재경원 당국자는 『특융이 반드시 국회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판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제일은행의 자구노력이 타당하고 국회가 동의하면 가능하다는 기존입장과는 엄청난 변화다. 정부는 제일은행에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 1조∼2조원의 특융을 해 주되 이 기준에 따라 다른 금융기관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보 및 기아 대책과 관련해서는 통상산업부가 파악한 현황 등을 중심으로 원칙적인 입장만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보의 경우 인수업체가 출자총액제한 규정에 걸리면 이를 해소해 주고, 기아에 대해서는 기아자동차를 회생시키되 필요하다면 협력업체도 적극 지원한다는 선이 될 전망이다.
정부는 종금사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22일 종금사 사장단이 건의한 정상화방안을 적극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외환보유고를 활용해 일시적인 외화조달난에 적극 대처하는 한편 국고여유자금 예치를 확대해 정부의 보증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이밖에 외화조달난 해소를 위해 기업들의 해외차입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수출 선수금·착수금의 영수한도를 확대하고, 연지급 수입기간을 30일 가량 연장하는 방안들이다.
하지만 강경식 부총리가 시장경제주의를 고집하는데다 금융위기에 대한 재경원 실무진들의 시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 「특단의 대책」은 「적극적인 제스처」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정희경 기자>정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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