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추락사고 이 극심한 수치심을 성화시킬 수 없을까올 여름, 지인의 부름을 받고 남녘의 어느 섬에 갔다 왔다. 이미 폭풍주의보를 받아놓고 있던 무명의 섬에 간다는 것이 사람을 다소 흥분시키는 바가 없지 않았다. 다행히 배가 떴고, 그날 밤 바로 폭풍이 그 섬에 당도했다. 섬의 서쪽 해안 방풍림을 모조리 거둬 갈듯이 세차게 부는 바람 속에서 나는 섭리랄까, 인간 바깥에 있는 완강한 힘의 근육을 느꼈다. 뭍으로 빠르게 몰려가는 먹구름 사이로 조명탄이 터지는 것보다 더한 뇌성번개가 작열했고, 나는 이제 『번개가 드러낸 바다』를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섬은 고요했다. 자연은 「더러운 성깔」을 스스로 부끄러워 하기라도 한듯 저녁에는 섬의 서쪽 썰물 위에 낙조의 인상주의적인 수줍음을 잔뜩 물들여 놓기도 했다.
그리고 섬을 떠나는 날 아침 7시쯤 민박집 TV 소리에 잠을 깼다. CNN의 KAL기 추락사고 보도를 국내방송들이 인용하고 있었다. 아, 우리나라는 슬픈 나라다, 고 느꼈다. 동시에 나는 극심한 수치심에 전율했다. 이 수치심을 성화시킬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이 시는 그것을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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