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북한은 19일 북한의 신포 금호지구에 서 경수로 부지 착공식을 거행하였다.94년 10월 미·북 제네바 핵협상합의가 체결된 후 2년 10개월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KEDO는 2005년까지 북한에 1,000㎿급 경수로 2기를 공급하며 북한은 그 대가로 핵개발 활동을 동결한다는 것이다. 경수로 착공과 더불어 북한은 다자간의 국제적 틀 속에 들어오게 되었다. 나아가 KEDO가 북한이 한반도 평화정착문제를 다룰 4자회담 구도 속으로 들어오도록 촉매구실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즉 KEDO체제의 출범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됨으로써 여러 문제를 야기해온 북한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대북 경수로 지원사업의 큰 의미는 남·북한간 교류·협력의 새로운 장을 여는 데 있다. 남북한 근로자가 하루 7,000명, 연인원 1,000만명이 동원되고 남에서 북으로 수송되는 건설기자재 등의 총물량이 100만톤에 이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외교관의 북한 상주, 우편·통신 교환, 남북기업간 직접계약 등이 이어질 것이다. 이는 분단 이래 최초로 장기간 계속될 대규모의 인적·물적 교류를 전제로 하는 협력사업이기 때문에 상호 신뢰증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남북한간의 관계개선을 통한 통일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경수로 사업이 북한에 미칠 영향도 북한의 폐쇄적 체제에 비추어 관심을 갖게 한다. 북한은 현재 체제유지를 위해 「자유화바람」의 유입을 차단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갈구하고 있다. 경수로 건설사업과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통해 실익을 얻으면서도 체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적당한 수준에서 차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으면 앞으로 이러한 통제된 개방정책을 확대해 나갈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북한당국이 근로자들을 철저히 통제한다 하더라도 건설현장에서 남한 인력과 함께 일하는 5,000명이라는 인원은 자연히 밖의 사정에 눈뜨게 될 것이다. 북한 주민들은 직·간접적으로 한국이 재정 기술 인력면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이들은 남한에 대한 적대감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북한 체제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KEDO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한·미·일간 경수로 비용분담 문제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상태이다. 경수로 건설비용이 50억달러가 넘는데 미국은 경수로 비용부담 불가방침을 시사하고 있으며, 일본은 약 10억달러 수준의 부담을 제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한반도 차원의 지역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고, 미·일을 중심으로 하여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비용분담에 적극 참여토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과거 핵투명성 보장이 확실치 않기 때문에 경수로 건설이 완공될 때까지 최소한 8년간 핵무기 잠재국 또는 보유국으로 핵추가 사찰문제도 계속 남아있다.
또한 북한은 북·미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며 경수로 건설에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경수로의 완공을 위해 계속해서 성의를 보일 것인지, 아니면 이 사업을 빌미삼아 또 어떤 카드를 들고 나올지 모를 일이다. 북한은 벼랑끝 외교와 핵개발을 포함한 군사적 위기 조성으로 경수로와 식량지원 등을 얻어낸 것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북한의 총체적 위기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도 경수로건설에 많은 영향을 줄 것임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북한이 변화해야 한반도 평화가 유지되고 궁극적으로는 통일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KEDO체제 출범은 중·장기적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따라서 대북경수로 지원사업은 우리에게 남북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한 투자이기도 하다. 경수로 건설사업이 순탄하게 진척되어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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