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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상대성 이론/성석제 소설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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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상대성 이론/성석제 소설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8.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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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끝자락이 남아있는 참에 먼 곳에서 온 벗이 공동묘지 가까이에 집을 지을까 말까 망설이는 내게 이런 충고를 해주었다.『여름에는 으스스해서 에어컨 쓸 필요없지, 겨울에는 생땀이 절로 나니 난방비 절약돼, 죽어도 멀리 갈 필요없지. 터 잘 잡았네 그려』

나는 즉각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경애하는 벗에게 답례를 해 주었다.

『아시다시피 남극 대륙의 펭귄 가운데 최대종은 황제펭귄이네. 또 아시다시피 황제펭귄은 남극의 겨울에 번식하는 유일한 새라네. 수컷은 잔뜩 먹고 뚱뚱해지면 100㎞ 너머 오지로 걸어 들어가 40일동안 굶으며 암놈이 오기를 기다린다네. 짝을 짓고 나면 수컷은 제 몸에서 가장 따뜻한 발등 위에 알을 올려놓고 아랫배의 피부로 싸서 알을 품지. 알 품는 기간이 55일이니까 또 두달 가까이 굶는 거야. 암놈은 그동안 바다로 나가서 배터지게 물고기도 먹고 수영(자유형, 배형, 혼영, 혼계형 등등)도 하며 놀다가 새끼가 부화할 때쯤이나 돌아온다네. 암놈이 살이 뒤룩뒤룩 쪄서 돌아오면 그제서야 수컷은 비틀거리며 머나먼 바다로 나간다네. 남극 내륙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55도야. 한겨울에는 영하 70도나 되고, 가장 따뜻한 달에도 영하 30도쯤 된다고 하네. 아무리 황제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붙은 펭귄 싸나이라 해도 견디기가 쉽겠나. 추위와 배고픔으로 제정신을 잃는 펭귄이 생기는 법이지.

어느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 황제펭귄 한마리가 있었네. 죽을둥살둥 모르고 간신히 바닷가에 도착했거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남극의 한류를 따라 북쪽으로 헤엄치다 어느 섬에 상륙했겠다. 해설자는 그 섬의 기온이 무려 영하 20도나 되는 살벌한 날씨라고 설명하더군. 그러니 그 가엾은 황제 펭귄이 어떻게 됐겠나. 「아이고, 쪄죽겠네」하면서 짧은 앞다리를 부채질하듯 연신 휘두르며 쩔쩔매고 있었다네. 영하 20도래, 영하 20도. 자네 같아도 참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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