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됨됨이 관계없이 단순화한 이미지/그 이미지의 부침에 웃고 우는게 정치인가금년 12월 대통령선거까지는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이 계절에 사람들은 더욱 신문을 열심히 읽고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더 많아지고, 그만큼 더 언론의 힘은 뚜렷해질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이회창씨 아들들의 병역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으면 언론이라는 것 등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나에게 필요한 것중의 극히 작은 일부밖에 만들어내지 못하고 나머지는 모두 남이 만들어내는 것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래서 남이 하는 일이 나에게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 이 사회에서는 남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힌 오늘날의 세상에서 그날그날 일어나는 일을 전하여 퍼뜨리는 것이 바로 언론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줄 뿐만 아니라, 또 그 일들이 자신이 살아가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하여 해석을 주고 평가를 내린다. 심지어는 무엇이 즐거움이고 무엇이 슬픔이며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미움인지 하는 감정까지도 만들어내고 설명하여 준다. 언론은 사람의 눈과 귀, 다시 말하면 머리 속의 생각을 거머쥐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카뮈가 소설 「이방인」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하여 『요즈음에 사람이 하는 일이란 간통을 하고 신문을 읽는 것이 전부』라고 중얼댈 때, 그것은 비단 그 소설의 배경이 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어느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선거란 국민들이 인물과 정책에 대한 생각을 정해서 이것을 투표라는 행위로 나타내는 절차이다. 그러니 평소에도 위세가 등등한 언론이 권력의 향배를 정하는 대통령선거에 즈음해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거머쥐게 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특히 대통령선거에서는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그나마 후보를 여러 가지의 연고에 의하여 직접 아는 일이 드물지 않은 것과는 달리 그야말로 국민의 거의 전부가 한번도 말을 나누어 본 일도 없는 사람을 두고 선택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 결국 국민은 언론이 알려주는 바를 통하여 후보들의 됨됨이를 알게 된다. 또는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일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떤 사람의 「됨됨이」에 대하여도 하나의 표어 또는 상징으로 이를 단순화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대로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사실은 엄청나게 복잡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복잡함을 있는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어떠한 계기에 그 사람으로부터 얻은 이미지나 느낌으로써 그 사람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일단 그 이미지의 안경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그 안경에 맞추어서 해석되고 평가된다. 이미지가 바로 그 사람이 되는 요술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서는 그 이미지에 맞지 않는 일이 밝혀지거나 하면 그것은 「정체」를 가장한 배신이 되어서 때로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의 대중정치에서 불가피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회창 대표에 대하여 「대쪽」의 상징을 부여한 것은 다름아닌 언론이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 배경은 아무래도 그의 판사로서의 경력일 것이다. 그런데 60년부터 유신헌법과 군사독재정권을 거쳐 오면서 그가 쓴 수많은 판결들이 과연 한 치의 틈도 없이 모두 「대쪽」의 이미지대로인지는 누구도 객관적으로 검증하여 본 바가 없다. 또 생각해 보면 사람의 한정없이 다양한 주름과 그늘을 다루는 재판에서 과연 「대쪽」이 항상 바람직한 것인지를 누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언론이 전하는 「대쪽」의 이미지를 대부분의 국민은 사랑하였다. 국민들은 어쩌면 그 이미지의 사람을 목마르게 구하였던 것이나 아닌가. 그리하여 그것이 정치적으로 큰 자산이라고들 하더니, 이제는 사실 여하와는 관계없이 그 이미지의 파탄 또는 파탄 가능성에 울고 웃는다. 사람은 여전히 그 사람인데 말이다. 정치란 그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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