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사랑 결핍이 빚은 성격장애 결혼해서도 자식에게 ‘대물림’/94년 첫 결성 주 1회 모임통해 고통경험 함께 나누며 상처 치유『술취해 폭행하는 아버지로부터 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불쌍한 엄마를 위해서 착한 아이가 되려고만 했다. 지금 내 마음은 공허감 뿐이다』 『나만은 아이들한테 잘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알콜중독자와 결혼해서 아이들에게 같은 불행을 주게 될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해야 사랑인지 모르겠다. 선물만 사주다 보면 1달만에 파경이 온다. 여자들은 나를 이용하고 그걸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라면땅도 먹고 싶고 남들처럼 공부하고 싶었다. 어린 동생을 공장에 보내고 돈을 빼앗은 오빠에게 왜 그랬나 묻고 싶다. 방치한 엄마도 원망스럽다』
18일 하오 2시. 서울 성동구 왕십리 성골롬반회관내 집회실에서는 성인 남녀 10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름하여 「성인아이모임」이다.
「성인아이」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아야 할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성장함으로써 신체는 성장했지만 정신 일부는 그 시절의 어린이로 남아있는 사람을 일컫는 정신의학적 용어. 이들은 늘 불안해하고 남들을 잘 믿지 못하기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어린시절의 상처를 은폐하고 살다보면 자학적인 신경증이나 남을 괴롭히는 성격장애로 발전하기도 한다. 때문에 비슷한 사람을 골라 결혼하고 자녀들에게 올바른 사랑을 쏟지 못함으로써 성인아이를 대물려 만들어낸다. 일종의 「사회적인 유전병」인 셈이다. 이 모임은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자는 적극적인 치유모임이다.
이 모임이 생긴 것은 94년. 지난해 가을 2개로 늘어났으며 5월에는 공개모임을 갖고 확산에 나섰다.
참석자는 20대부터 60대까지, 직업도 주부 대학생 회사원 사업가 성직자 등 다양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특징.
모임은 주 1회 만나 1시간동안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때 어떤 평가도 금물. 반드시 익명을 사용한다. 신경안정제 50알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나와도 참석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런 충동은 누구나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황모(38·주부)씨는 말한다.
모임에 참석하면서 이들은 「나도 행복을 느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닫는다. 이때문에 고통을 주던 배우자와 별거하거나 부모와 연락을 끊기도 한다. 모임에 나오며 도박과 알콜에 젖은 남편에게 결혼생활 30년만에 처음으로 맞서보았다는 구모(56·간호조무사)씨는 『남편 역시 성인아이였던 부모때문에 성인아이가 된 사람이라서 가엾긴 하지만 내 자식을 위해 나만은 이 대물림을 끊어야겠다고 모질게 생각했다. 앞으로는 남편이 노력해야 나도 남편을 위해주겠다. 이용당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희망은 좀더 모임장소가 많아졌으면 하는 것. 김영희(51·가명·주부)씨는 『이 모임이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는 만큼 동사무소나 구민회관 등에서 모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현재는 월요일 하오 2시 성골롬반회관(02―742―4554)과 금요일 하오 7시 종로성당(02―765―6105)에서 모임이 있다. 관심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며 대개 매 모임마다 10∼20명이 모인다.<서화숙 기자>서화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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