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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나는 도시/매연·오물·음식 그리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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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나는 도시/매연·오물·음식 그리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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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8.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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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만드는 수많은 악취에 현대인의 코는 괴롭다/공단을 낀 도시들의 경우엔 창문을 열 수 없을 정도인데 ‘악취와의 전쟁’이라도 선포해야 할 때가 됐다경기 안양시 평촌신도시에 사는 K씨(28·여). 서울 마포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은 상오 6시40분. 오늘도 인근 쓰레기소각장에서 풍기는 매캐한 냄새가 여전하다. 아파트 쓰레기 수거함에서 흘러나온 침출수 냄새가 고약해 코를 막는다. 좌석버스를 기다리다 심한 매연냄새에 다시 한번 코를 감싼다. 1시간동안 버스에서 시달리고 나면 기름냄새 때문에 가벼운 두통. 버스를 내려 직장까지 걸어갈 때는 길거리에 놓인 쓰레기 봉지의 오물 썩는 냄새. 빌딩에 들어선 뒤에야 비로소 한숨을 돌린다.

K씨는 사무실 책상 위에 향긋한 포푸리를 얹어 놓았다. 좋아하는 라벤더향이다. 점심시간이면 만원 엘리베이터에서 땀냄새를 맡으며 지하식당으로 향한다. 식사 뒤에는 양치질을 하고, 껌을 씹는다. 마늘 등 양념이 푸짐하게 들어간 음식 냄새와 구취로 동료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다.

하오 7시, 퇴근시간. 다시 냄새와의 전쟁이다. 지하철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술과 마늘 냄새를 심하게 풍기는 취객이 접근할 때다. 향수를 너무 짙게 뿌린 여성이 옆에 서면 골치가 지끈거린다. 아파트단지 쓰레기수거함에서 썩는 오물냄새가 다시 코를 찌른다. 방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코는 해방된다. 하지만 흐린날 밤이면 인근 공단에서 플라스틱이 타는 듯한 묘한 악취가 풍겨와 창문을 열어 놓을 수 없다.

도시는 끊임없이 냄새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도시인의 코는 괴롭다. 1,000여만명이 부대끼며 사는 서울. 사람 냄새만으로도 질식할 지경인데, 오만가지 냄새들이 코를 자극한다. 도로를 메운 자동차가 뿜어대는 매연냄새, 주유소의 기름냄새, 건물 뒷쪽에서 수거를 기다리는 쓰레기 봉투에서 냄새가 진동한다.

스모그 현상이 심한 날에는 더하다. 공단 근처에서는 정체불명의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골목마다 식당은 고기 굽는 냄새를 피운다. 유원지도 마찬가지다. 프루트펀치향으로 치장한 슈퍼마켓은 「향기마케팅」으로 고객을 끈다. 악취에 시달린 사람들은 주말이면 풀냄새 꽃냄새를 맡기 위해 삼림욕장으로 향한다. 악취는 도시인에게 새로운 적이 된 지 오래다.

경기 시흥시 반월·시화공단과 폭 200m 남짓한 차단녹지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시화신도시. 이미 5만여가구가 입주를 마친 이 지역의 가장 큰 민생현안은 서풍을 타고 공단에서 불어드는 악취.

주민 정경옥(34·여)씨. 『특히 날이 흐리거나 안개가 낀 날 새벽께, 코를 찌르는 암모니아 등 화학약품 냄새, 매캐한 가스 냄새, 지린내같은 역겨운 냄새가 반월·시화공단 쪽에서 불어와요. 심할 때는 하루에 두세번도 악취가 나고, 두통 현기증 등에 시달려야 하죠. 열대야 때도 창문을 열어놓을 수가 없어요. 지난해 3월 이사온 뒤 19개월 된 아이가 부쩍 병치레가 많아져서 악취 때문이 아닌가 걱정스러워요』

입주민이 늘면서 악취로 인한 민원이 급증하자 시흥시는 7월부터 주민과 공동으로 「환경기동감시단」을 구성해 감시활동에 나섰다. 공무원과 주민 50여명이 24시간동안 공단의 악취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공단과 아파트단지가 바짝 붙은 입지 때문에 「악취지대」의 오명을 벗기는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만년 악취에 시달리는 지역은 시화 뿐만이 아니다. 난지도 근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일대, 8개 대규모 공단과 수도권 쓰레기매립장을 끼고 있는 인천, 석유화학공장이 들어서있는 여천공단, 대산공단 등은 상습적으로 고약한 냄새를 뿜어내는 악취공해지역이다.

지난 6월 인천에서 발생한 악취소동은 도시의 냄새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었다. 바람이 별로 없고 흐리던 날 새벽께부터 도시를 뒤덮은 메스꺼운 냄새 때문에 수십만명이 고통을 겪었다.

인근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 배출한 휘발성 물질, 장마를 앞두고 준설한 하수구의 퇴적오물, 연안갯벌에 쌓인 부패물질 등이 만들어낸 악취는 6월26일 새벽 인천 부평·서구 일대에서 시작돼 29일에는 중·동·남·연수구 등 도시 전역으로 퍼졌다. 인천 남구 용현동 K아파트 단지에서는 20여세대에서 가스경보기가 작동할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암모니아 냄새와 지릿한 소변냄새, 비린 갯벌냄새, 가스냄새 등이 뒤섞인 역겨운 악취 때문에 주민들은 눈이 따갑고 속이 메스꺼운 증상을 호소했으며 밤잠을 설치거나 구토증세까지 보였다.

그런데 주민들의 고통과는 딴판으로 당시 인천의 대기오염수치는 정상이었다. 아황산가스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등 대표적인 대기환경기준물질은 모두 기준치 이하였다. 환경부와 인천시청 등 현장조사반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냄새를 풍기는 벤젠 톨루엔 등 휘발성유기물질(VOC)의 수치는 평상시보다 높게 측정됐다. 그러나 이 물질들은 배출규제물질에 포함돼있지도 않다. 결국 악취발생을 원천적으로 규제할 법적·제도적 장비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환경부 대기관리과 정연만 과장.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악취를 유발하는 휘발성유기화학물에 대한 규제가 초보적인 단계이다. 불쾌감을 유발하는 악취물질 중 인체 유해성이 검증되지 않은 것도 많고, 악취 판정도 관능법 등 주관적인 방법에 매달리기 때문에 단속도 규제도 어려움이 많다』

연세대 예방의학실 신동천 교수는 이런 시각에 대해 부정적이다. 신교수는 『악취의 인체유해 여부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악취가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현실적인 요인이라면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냄새속에 사는 현대인. 악취와의 전쟁을 시작할 때가 됐다.<김경화 기자>

◎냄새 어떻게 맡나/후각세포 자극→뇌로 전달→후각중추 판단/인간 코 후각세포 500만개/이론상 10의 23승 종류 감지/실제론 2,000가지만 구별

냄새는 코안 뒤쪽 후각상피의 후각세포가 외부 자극을 받아 이를 뇌로 전달하고 후각중추가 그에 따른 감각을 일으킴으로써 느끼게 된다. 물질에서 증발돼 나오는 휘발성 미립자가 공기에 섞여 콧속에 들어가 후각상피 표면의 점막에 달라 붙어 화학반응을 일으켜 후각세포를 자극한다.

인간의 코에는 약 500만개의 후각세포가 있다. 코가 발달했다는 개는 후각세포가 2억2,000만개로 인간의 40배가 넘는다. 이론상 인간은 10의 23승이라는 천문학적인 종류의 냄새를 감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뇌의 후각중추에는 이런 많은 종류의 냄새에 대한 정보를 저장해 둘 만한 공간이 없어 실제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이보다 훨씬 적다. 인간은 원래 1만여가지 냄새를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문명 발달로 인한 감각기관의 쇠퇴로 현재는 약 2,000가지 냄새를 구별할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냄새에 대한 반응은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예민한 사람도 있고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아예 냄새를 맡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산업의 발달로 많은 종류의 물질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악취 또한 늘어나 불행하게도 후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더욱 괴롭게 됐다. 우스갯소리로 『코딱지를 파 보면 그 도시의 오염도를 알 수 있다』는 말이있다. 그만큼 코는 대기오염에 민감하고 현대인들의 코는 오염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매연과 공해물질 탓에 농촌보다는 도시에서 비염 기관지염 인후두염 환자가 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조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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