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 9월4일 하오 6시 일본 홋카이도(북해도) 북쪽 끝의 왓카나이(치내)시내 한 호텔 접견실. 이곳엔 3일전인 1일 새벽 사할린 상공에서 소련공군기에 격추당한 KAL 747점보여객기에 탑승했던 일본인 승객들의 유가족이 격앙된 표정으로 KAL측 진혼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상오 진혼단을 이끌고 김포공항을 떠나 하오 4시30분 왓카나이에 도착한 당시 조중건 부사장은 이곳에서 일본인 유족들과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조부사장은 호텔접견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무릎을 꿇고 넙죽 큰절을 올리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갑작스런 조부사장의 큰절에 접견실은 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어안이 벙벙해진 유가족들은 말을 잃고 조부사장의 거듭된 사죄의 말과 앞으로의 대책을 경청했다. 불과 몇분전만 해도 금방 KAL대표단에게 폭력을 휘두를 것 같았던 모습은 거짓말 같았다. ◆85년 8월12일 도쿄발 오사카행 JAL 747점보여객기가 압력격벽의 결함으로 추락, 무려 5백20명이 사망했다. 사고 순간 오사카에 있던 JAL의 다카기(고목) 사장은 허둥지둥 하네다공항으로 달려와 유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조부사장의 사죄법을 배운 것이다. ◆사죄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서양처럼 사고가 나면 보상 등 뒤처리를 보험회사에 떠넘기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사할린 상공의 KAL기 격추사건이나 이번 괌추락사고처럼 몸으로 사죄하는 동양의 방식이 있다. 역시 동양은 돈보다 성심 성의를 다한 사죄가 유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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