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냄새가 다르다. 지하철에서 스친 낯익은 여인. 그의 옷소매에서 풍기는 향기가 오늘따라 다르다. 가을은 이렇게 느낌으로 먼저 다가오는가? 한 성급한 라디오 DJ가 이브 몽탕의 「고엽」을 올려놓고 계절의 전령사를 자처한다. 「그 시절 인생은 더욱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뜨거웠지… 낙엽은 삽 속에 묻혀 버리네. 추억과 회한도 마찬가지로…」 참 좋은 노래다.휴가도 끝났다. 직장에서 누군가 『이제 낙이 없군』이라고 독백했다. 그의 말에 허전함과 기다림이 동시에 묻어온다. 그렇지만 여름의 번잡과 들뜸, 관능과 욕망에서 벗어나니 마음에는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가? 차 한 잔 값만 달랑 들고 길을 떠나도 충분히 안온할 수 있는 이 계절 또한 낙이려니.
신문을 펴본다. 괌 참사의 비극에서 신문도 차분해지고, 관심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온통 쏠려 있다. 추석을 보내고 계절이 깊어가면 대선정국도 단풍과 함께 본격적으로 불타 오르겠지.
97년 가을, 우리는 정치판에 초연할 수 없을 운명이다. 술집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용」들이 연출하는 드라마에 빠져 흥분하고, 싸움도 하고, 내기도 걸 것이다. 이 드라마를 어떻게 볼 것인가? 나는 대선정국 관전 7계명을 정해 보았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①정치판을 철저히 즐기겠다. 정치는 「쇼」니까.
②후보의 말(마·언)바꾸기에 놀라지 않겠다. 이미 수없이 보아왔으니까.
③누가 출마해도 욕하지 않겠다. 싫으면 안 찍으면 그만이니까.
④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 신문 방송마다 다르니까.
⑤냉소하지 않겠다. 그게 수준이고 현실이니까.
⑥투표일에 놀러가지 않겠다. 무관심은 지식인이 취할 바가 아니니까.
⑦누가 당선되든 환호도, 탄식도 않겠다. 믿는 도끼에 발등도 찍혀 보았고, 믿지 않았던 사람이 혹 살 맛 나게 해줄 지도 모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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