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로 착공의 의미/94년 체결 제네바 핵합의 구체적 이행단계/연인원 1,000만명 동원 ‘대북사업 바이블’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관계자들은 19일의 경수로착공식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비유한다. 공격·파괴·점령이 아닌, 화합·건설·공동 번영의 취지가 강조된 것이긴 하지만 경수로착공이 그만큼 대역사이고 한반도 정세에서 역사적 분기점이 될 수 있으리 라는 기대 에서이다.
착공식 준비를 위해 금호지구에 체류중인 KEDO 관계자는 『중장비와 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일렬로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다』며 『앞으로 북한에도 주차난과 교통체증이 발생하게 됐다』고 감탄했다. 이 「장관」은 앞으로 2천5년 정도로 예상되는 완공시점까지 계속된다.
경수로착공은 남북간에는 대규모 경협의 시발이지만 남북한, 미국, 일본간에는 지난 94년 체결된 북미 제네바 핵 합의가 구체적 이행단계에 들어갔음을 의미한다. 95년 경수로공급 협정 이후 KEDO와 북한사이에는 산더미 같은 협상 페이퍼가 쌓였고 부지조사만 7차례 시행 됐다.
착공식은 경수로사업이 남북관계를 반영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시간상의 지체가 있긴 했지만 약속 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경수로 사업만큼은 북한이 더 적극적 이었다. 지난해 9월 잠수함 침투사건으로 우리측이 경수로사업의 완급을 조절할 기미를 보이자 북한이 『핵동결을 파기하겠다』고 위협하는 등 경수로 사업의 진행에 몸 달아하는 모습을 보인게 좋은 예이다.
경수로사업에는 여의도의 거의 3배에 달하는 260만평의 면적에 남북한 연인원 1,000만명, 1일 최대 인원 7천명이 동원된다. 경수로기획단 관계자는 『남북한 인력, 기술, 물자가 얽히고 설키는 분단 이후 최대의 공존의 장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경수로사업은 북한의 핵동결을 전제로 하는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에서 시작된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북한이 핵위협 카드로 「공짜」로 얻은 전리품이다. 북한 지도층에 군사력 우위 정책을 고수해야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남북 경제협력사업을 추진중인 국내 사업자들은 경수로사업을 대북 사업의 바이블로 간주한다. 인력 파견과 신변안전 보장, 장비 이동, 여가활용을 비롯한 현지 생활 등 남북 주민들의 「동거」에 필요한 제반 사전 준비와 조치들이 경수로사업을 통해서 하나 하나 확립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김병찬 기자>김병찬>
◎남은 주요현안/재원마련 방안 ‘발등의 불’
경수로착공 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와 한미일 3국, 북한이 함께 넘어야 할 과제는 첩첩산중이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재원, 즉 「돈」문제다.
KEDO와 한미일 3국은 착공준비에 전력을 기울이느라 미뤘던 사업비 확정 및 재원 분담·사업참여 비율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뤄야 한다. 재원이 마련돼야 한국전력과 KEDO가 본계약(상업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부지준비공사가 마무리 된 뒤 곧바로 원자로·터빈·제너레이터 등 주요기기와 설비의 설계, 제작·구매, 설치·시공, 시험·시운전·운전 등의 후속 단계를 추진 할 수 있다.
부지준비공사는 한전이 KEDO와 본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사전사업계약(PWC) 체결이라는 임시 방편을 빌어 진행되고 있다. 부지공사 사업비 4,500만달러는 한국이 본 계약후 사후정산을 전제로 부담키로 돼 있다.
그러나 부지준비공사가 끝날 98년 8월까지는 52억달러로 추정되는 총공사비의 확보 방안이 한미일 3국간에 합의돼야 한다. 특히 일본의 경우 4월 회기 시작 이전에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예산이 확보되기 때문에 시간이 충분치 않다. 재원마련에 관한 3국간의 유일한 합의는 한국의 「중심적」, 일본의 「의미 있는」, 미국의 「상징적」역할 부담 정도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푼도 못 내겠다』, 일본은 『정액 기준으로 1,000억엔(10억달러 가량) 이상은 곤란하다』는 입장은 비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미국은 대신 북한에 중유비용을 제공하고 있다는 명분을 대고 있다. 한국은 사업비의 60% 이상은 부담할 수 없다는 것이 확고한 입장이다.
재원분담 비율에는 사업참여 비율과 각국 국내업체들의 「밥그릇」문제가 걸려 있어 의견 일치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돈을 내는 만큼 터빈·제너레이터(TG), 원자로 등 핵심 부품이 「일제」가 돼야 한다는 속셈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북한에 제공될 한국형 원자로의 핵심부품에 「도시바」나 「히타치」상표를 붙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주장은 말도 안된다는 것이 원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원자로나 TG가 일제가 되면 경수로가 「한국형」이라는 상징성이 크게 훼손되며, 특히 우리 설계도를 일본이 넘겨 받아 제작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산업기밀 보호상의 문제가 제기 된다는 것이다. 사업비 비율로만 보면 6.1%에 불과한 TG 제작에 일본이 매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역시 주요 부품 사업에 참여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자칫 우리가 「돈만 내는 물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고 봐야한다. 이 경우 정부는 재원마련에 필수적인 국회와 여론의 동의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권혁범 기자>권혁범>
◎장선섭 기획단장 인터뷰/“숱한 곡절넘어 첫 삽에 의의/국민동의 있어야 사업 성공”
장선섭(61) 경수로기획단장은 경수로 착공이 「결국 이뤄졌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착공의 의미는.
『한·미·일과 북한 등 당사자가 많은 사업인데도 우여곡절 끝에 착공됐다. 이 사업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정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남북한 당국이나 주민사이의 신뢰 구축, 상호 이해의 폭도 자연스럽게 넓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9월의 북한 잠수함침투사건으로 착공이 10개월 가량 늦어지는 등 어려움이 많았을 것으로 보는데.
『사안별로, 한미일·KEDO·북한간에, 또 내부적으로 워낙 변수가 많아 최종 마무리가 될 때까지 안심할 수 없다. 착공일이 확정된 것도 불과 며칠 전이다. 잠수함 사건 때는 국민 정서나 여론으로 봐서 정상적인 사업추진이 불가능했다. 국민적 동의와 지지가 없으면 경수로 사업은 어렵다』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어 예측 못한 일이 발생 할 수도 있는데.
『우리와 KEDO 인력의 신변안전은 영사보호 의정서에서 포괄적으로 보장돼 있다. 사업지구에 우리측 정부 대표 2명이 상주하기 때문에 구체적 사건·사고에 대해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북측과도 협의가 이뤄질 것이다. 물론 제한된 지역에 집단거주 하게 되면 생활에 어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우디 아라비아에서의 경험을 얘기 하자면 우리 중동 파견 근로자들은 당시 10만명 이상이 3년 동안 열사의 기후 등 악조건을 견뎌냈고 특별한 강력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금호지구의 우리 인력은 그 때보다 더 큰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것으로 확신한다』
―앞으로 한미일 3국간의 경수로 비용 분담, 사업참여 비율, 재원조달 방안 등이 큰 과제인데.
『공사 비용을 3국이 확대경을 갖다 놓고 정밀 실사하고 있다. 그동안 착공준비에 전념하느라 본격적으로 재원 관련 협상이 진행되지 못했다. 이 문제로 공사가 더 늦어져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재원조달 방안은 국민경제에 주름이 가지 않게 하는 범위내에서 다각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북측의 자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부지조사와 몇 차례 의정서 협상을 통해 초보적이긴 하지만 남북한 실무진간에 진지한 공동노력이 이뤄졌다』<김병찬 기자>김병찬>
◎경수로사업 일지
▲94.10.21=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문 서명 발표.
▲95.3.9=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뉴욕).
▲95.5.19∼6.13=북·미 준고위급회담(콸라룸푸르), 합의문 발표
▲95.8.15∼8.22=KEDO 경수로 부지조사활동 착수(금호지구).
▲95.12.15=KEDO·북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뉴욕).
▲96.3.20=KEDO·한전, 주계약자 합의서에 서명(뉴욕).
▲96.7.11=KEDO·북, 특권면제 및 영사보호, 통행·통신 의정서 서명(뉴욕).
▲96.9.18=잠수함 침투사건 발생.
▲97.1.8=부지인수 및 서비스이용 후속의정서 서명(뉴욕).
▲97.6.23∼7.2=제3차 부지착공 실무협상 및 19개 양해각서 체결(뉴욕).
▲97.6.24=채무불이행시 조치의정서 서명(뉴욕)
▲97.7.12∼7.19=개별서비스계약 1차 협상(신포).
▲97.7.15∼7.20=경수로 바지선 시험운항(금호지구).
▲97.7.22∼7.26=착공 관련 한전 및 시공회사 관계자 80명 파북.
▲97.7.25=착공 관련 중장비 40여대 및 자재 북송.
▲97.7.28=금호지구에 KEDO사무소 개설(한미일 정부 대표 상주).
▲97.8.4=남북간 전용통신 8개회선 개통(금호지구∼한전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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