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말복도 지났다. 며칠후면 처서가 다가온다. 맹위를 떨치던 여름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계절은 어느새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말복은 음양오행설에서 더위가 금을 녹일 정도로 가장 지독하다고 했다. 그러던 무더위도 자연의 순환 앞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석으로 언뜻 한기가 스민다. ◆절기상으론 지나간 입추가 가을의 시작이지만 가을 빛은 역시 처서가 지나야 나타난다. 예부터 처서가 되면 벼가 누렇게 익기 시작하고 매들은 참새사냥에 나선다고 했다. 비록 충청남도 등 일부 지방에 폭우로 인한 상처가 남아 있지만 올해는 어느 해보다 대풍이 기다려진다. ◆가을에 대한 기대는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 준 망각 덕분이다. 망각은 약이면서도 병이다. 한여름의 지독했던 더위도, KAL기 추락의 비극도 벌써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지고 있는 느낌이다. 아시아나항공기 추락,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때도 다시는 비극을 되풀이 말자 하고서도 우리는 또 대형참사를 겪었다. ◆선인들은 가을이 되면 추선, 즉 가을부채라는 말을 빌려 인간의 경망함을 깨우쳤다. 한여름에 한시도 손에서 떼지 못하던 부채건만 가을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부채를 어디에 둔지도 모르게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추선을 「버림받은 여인」으로도 상징했다. ◆제발 대형참사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겠다. 그 첫걸음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다.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마지막 사람일 뿐이다. 자동차의 볼트 하나 도로의 표지 하나에도 생명을 다룬다는 두려움이 깃들어야 한다. 그리고 참사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을을 맞으며 추선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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