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패전한 52년전 대부분의 일본학교는 「학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도시의 어린이들은 전화를 피해 지방으로 집단 피난했다.중학이상의 학교는 각의에서 결의한 「결전 교육조치 요강」 등에 의해 수업을 정지당했고 학생들은 군수공장에서 일하거나 식량증산을 위해 동원됐다.
전후 혼란중 새로운 교육제도가 모색됐다. 「6·3제」가 시작된 것은 1947년 4월1일 부터이다. 「6·3제」가 시작된지 50주년을 맞은 지금 그동안의 교육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역으로 잃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6·3제」의 골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전원에게 중학교의 문호를 열어주는 것으로 교육기회 균등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아가 누구라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했기때문에 전전의 복잡한 학교제도에 비해서는 매우 개방적인 시스템이다. 단순형의 학교시스템은 젊은이의 진학의욕을 자극해 경쟁자를 늘리는 현상을 초래했다.
이것은 전후의 경제성장을 촉진시켜 생활수준의 비약적인 향상에 공헌하는 동시에 고학력 사회를 형성하게 했다. 반면 입시경쟁의 과열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에도 직면했다. 지식의 양, 즉 성적이 사람을 평가하는 도구가 돼 학교와 교육의 내용을 점점 획일적으로 변화시킨 감이 있다.
이같은 경쟁이 어린이들을 괴롭게 하고 여유를 빼앗아 개인의 개성을 박탈한 것은 아닌가. 선진국을 따라잡고 추월하는 시대에 유효했던 학교 시스템은 사용 연한을 이미 넘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중앙교육심의회는 「살아가는 힘을 여유속에서 익히게 한다」 「형식적인 평등으로부터 개성과 능력에 맞는 교육체계를 확립한다」는 것을 기둥으로 하는 학교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중에는 학교의 경량화를 꾀하는 중고 일관교육과 월반제도도 포함돼 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과 사회성을 배양하고 개성을 키우는 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순리적으로 옳다. 남은 것은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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