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잠잠할 만한데 또 그 얘기냐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얘기가 나온 김에 할 얘기는 다 해 두는 것이 좋을 듯싶다.KAL기 추락사건 보도가 좀 수그러들 만하니까 이번에는 느닷없이 조순씨가 대통령을 해 보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이회창씨 아들 병역스캔들은 잠시 물밑에 가라앉은 느낌이다. 하지만 야당이 9월 정기국회를 벼르고 있고 TV토론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냥 이대로는 넘어가기 어려울 게 분명해 보인다.
사람들은 좀체 의심을 풀 기색이 아니지만, 사실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군에 못 가게 빼돌리겠는가 생각해 본다면 이씨의 해명을 아주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전시가 아니니 생명을 잃을 위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분별없던 사춘기를 벗어나 사회인으로서 한몫을 맡을 수 있도록 규율과 질서를 가르쳐 주는 훌륭한 교육기관의 일면도 우리 군은 갖고 있다. 실제로 어머니들은 『처음 떠나 보낼 때는 애처로워 눈물이 났지만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늠름한 사나이의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아들이 얼마나 대견한지 나라에 감사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병역을 마치는 것은 또 당사자에게 마땅히 할 일을 해냈다는 자기 믿음을 갖게 하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그가 세상을 살아 가는 동안 구김살 없이 언제나 떳떳하게 처신할 수 있게 하는 귀한 자산이기도 하다.
그런 군대에 자식을 못 가게 한다면 그 아버지는 정말 이상한 아버지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김종필씨나 이회창씨처럼 현역 장교로 군을 경험한 사람이 어떻게 그 「이상한 아버지」 속에 낄 수 있을 것인가. 진실이 밝혀질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잘 생각해 보면 「자식을 군대에 보낸다」는 말 자체에 모순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년이 돼서 군대에 갈 나이면 한 사람의 어른이다. 부양가족에서 제외되고 근로소득세 공제대상에서도 빠진다. 부모 품을 떠나서 사회생활을 독립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나이임을 사회와 국가가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런 나이의 자식을 품에서 떼 놓지 못하고 껴안고 있으려고만 하는 부모의 집착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장성한 아들이 군에 입대하겠다는데 부모가 무엇으로 말릴 것이며, 막말로 죽어도 군대에는 안가겠다고 버틴다면 아버지가 무슨 재주로 그를 입대시킬 수 있겠는가.
어차피 군에 가고 안 가고는 당자가 결정할 일이고, 그 결정의 결과도 당자가 감당할 일이다. 자기 자식이라 해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려고 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강요된 선택의 결과를 부모가 책임질 수도 없고, 자식의 인생을 부모가 대신 살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치가 이러한데도 자식이 군에 가는 일에 간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는 처음부터 될 수 없는 일에 허욕을 부리는 바보나 마찬가지다. 이씨가 그렇게 어리석다고는 믿기 어렵다. 설령 이씨 아들이 억지로 살을 빼 면제받았다 하더라도 그건 그의 일이지 이씨의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설명으로도 병역스캔들이 아주 없던 일로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리를 따지고 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한데 영 개운치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이치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서운함」 탓인지 모른다.
이씨는 김대중씨나 김종필씨처럼 정치적 박해나 인생의 좌절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위에 설 자가 없을 만큼 훌륭한 가문과 학벌을 갖춘 엘리트다. 부족한 것을 알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셈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소유한 행복한 지도자에게서 못 가진 자를 위한 희생과 사랑을 느낄 수 없음이 서운한 것인지 모른다. 우리 국민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같은 낯선 이름보다는 세종대왕이 더 좋고, 명상록보다는 훈민정음 반포문처럼 백성의 불편을 불쌍히 여기는 지도자의 마음이 더 간절한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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